엄마가 된다는 것

오늘도 우리 엄마는 딸이 늦은 밤길에 퇴근할까봐
걱정이 되나보다.

글. 김은정

 회사에서 일을 하다가 엄마에게 ‘기운이 없다.’는 메시지를 받고, ‘또 어쩌다….’라는 걱정이 들던 날이었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니 엄마는 쉬고 있었다. 밥은 먹었냐고 물으니 “아니, 생각이 없어서 안 먹었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나는 “아플수록 잘 챙겨먹었어야지, 간단하게 뭐라도 먹자.”라는 걱정스런 말보다 “혼자라도 밥 잘 챙겨먹고, 영양제도 꼬박꼬박 먹고 해야 된다니까! 엄마 나이에 엄마처럼 영양제 안 먹는 사람도 없을 거야! 그러니까 자꾸 기운이 없지!”라며 잔소리를 시작한다. 내가 아플 때면 그렇게도 듣기 싫던 엄마 잔소리 같은 소리를, 나는 엄마보다 더 크게 내지르고 마는 것이다.

 과거에는 1년에 한번 병원에 가는 모습조차 보기 어렵고, 강했던 엄마가 이제는 일상생활에서 조금만 무리하면 다음날 기운이 없어 힘들어하는 모습을 종종 보인다. 그런 엄마를 볼 때마다 ‘내가 결혼을 하고, 사회생활을 어엿하게 하는 나이가 된 만큼 엄마의 나이 또한 같이 흐른 거겠지. 예전과 같이 늘 강한 엄마의 모습만 볼 수 있는 나이는 지났구나.’라는 생각에 코끝이 빨갛게 된다. 과거에는 ‘내 남편이 밥은 먹고 일하는지, 딸들이 다치지는 않을지, 공부는 잘 하고 있는지, 오늘은 또 뭘 해먹어야 맛있는 걸 해 먹었다고 소문이 날지.’ 등을 고민했을 엄마. 그렇게 앉으나 서나 가족 걱정만 하던 엄마를, 이제는 우리 자식들이 어떻게 안아드려야 할지 걱정하는 요즘이다. 하지만 엄마는 우리에게 안기기를 아직 어색해한다. 또 본인이 스스로 약해졌다는 걸 인정하기 힘들어하는 것 같다. 이제는 우리에게 좀 안기셔도 되는데 말이다.

 몸에서도 마음에서도 변화를 겪고 있을 엄마를 옆에서 가만히 느끼고 있자면, 나에게 큰 나무 같았던 엄마가 이제는 작게만 느껴진다. 가족들을 향한 엄마의 헌신적인 그 마음이 결혼을 하고 임신을 한 요즘 더욱 크게 느껴진다. ‘나도 내 아이에게 우리 엄마 같은 큰 나무가 되어 줄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되는 것이다. 물론 이런 고민을 할 때면 주위에서는 ‘너도 너희 엄마처럼 다 할 수 있어. 엄마가 되면 못 하는 게 없게 돼.’라고 답을 준다. 쉬운 답인 듯 건네는 그 말 속에는 우리 엄마들이 겪었을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이 담겨 있을 것이다. 내 커리어를 어느 정도 포기해야 아가에게 헌신적일 수 있을지, 건강한 가정을 어떻게 유지할 수 있을지, 조금씩 불러오는 배만큼 걱정도 함께 커져간다. 그렇게 나 역시 엄마가 될 준비를 해가고 있다.

 점심시간이 되니 ‘큰 딸, 밥은 먹었어? 오늘은 늦어?’라는 엄마의 메시지가 온다.?오늘도 우리 엄마는 딸이 늦은 밤길에 퇴근할까봐 걱정이 되나보다.



마음의 방

가본 적은 없지만
내 안에 분명히 존재하는 그런 방.

글. 정호윤

 부동산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많은 방을 알아보았다. 수많은 방을 추리고 추린 후, 전화를 걸어 허위매물을 걸렀다. 짬을 내 육안으로 확인해가며 다시 또 방을 걸러냈다.

 천안을 떠나야 할 때가 도래한 것이다. 지금이 아니면 영원히 떠날 수 없을 것 같다. 행복했던 추억과 죽은 사람들은 내게서 완전히 사라졌다고 생각했는데, 때때로 천안에 우두커니 있다 보면 그것들은 현실성을 갖고 되살아난다. 그럴 때 어느 날은 그 괴로움에 몸부림치다가도, 어느 날엔 그냥 나를 내맡겨버린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집 앞 성인용품점이나, 가끔 들르는 편의점의 사장님 등, 나와 깊은 연은 없지만 내 인식 속에 분명하게 있는 것들이 하나둘 내게서 떠나거나 사라져간다. 종래에 이곳에서 날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 않을까?

 아버지가 재혼하시면서 내 공간은 더욱 좁아졌다. 편한 옷을 입고 거실 창 아래에 웅크려 있을 수도 없게 되었다. 여기에 있으나, 휴대전화 화면에 보이는 6평짜리 방에 있으나 매한가지일 것 같았다. 어플을 통해 보는 방들은 하나같이 정갈했다. 나의 웅크린 몸을 쑤셔 넣고도 공간이 아주 많이 남아서, 날 행복하게 해줄 뭔가를 닥치는 대로 쌓아놓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두렵다. 이제 내 마음 둘 공간이라곤 정말이지 내 방 하나 밖에 남지 않은 천안이지만 왠지 그곳에서 멀리 떨어져 나올 자신이 없었다. 그 도시에서 있었던 추억들이 물귀신처럼 내 다리를 잡아끌었다. 추억은 꼭 하나만 떠오르는 법이 없다. 봄버맨 폭탄처럼 연쇄적으로 터져서는 사람의 마음을 마구 때려 짓이긴다.

 나는 언제라도 천안에 내려갈 수 있게 1호선 근처이면서, 4호선을 타고 위로 올라가 대학원에 갈 수 있는 장소를 물색했다. 나의 방, 나의 집, 나의 학교. 그 세 갈래 길은 한 곳을 기점으로 해서 각각 90분, 60분, 45분으로 균형이 맞는 듯 보였다. 이쯤 되면 대체 왜 서울로 상경하는지 그 목적의 근간이 흔들릴 정도다. 하지만 나약하고 불완전한 나를 세차게 흔드는 뭔가가 분명 있다. 그게 뭔지는 알 수 없다. 알지 못해서 아직 이겨낼 수도 없다.

 저기 독산동이나 구로 등은 생소하다. 하지만 단지 국철역명이라는 이유 때문에 나는 침울한 마음으로 억지 미소를 짓는다. 진짜 ‘억지로’ 내 안에서 정을 떼어내다가 붙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오늘도 나는 나의 작은 방에서 부동산 어플리케이션을 켠다. 액정 속 오륙평짜리 방은 말 그대로 ‘풀옵션’이다. 나에게 ‘지난 기억이나 걱정 근심은 모두 내려놓고 몸만 오세요.’라고 말하는 것 같다. 나는 잠시 동안 천안에서 유리될 수 있다. 가본 적은 없지만 내 안에 분명히 존재하는 그런 방인 것이다.



걱정은 나의 힘

걱정을 떨치기 어려울 땐 오히려 걱정을 ‘구체적으로’
해보려 한다.

글. 이승현

 할머니를 생각하면 찡그린 미간이 떠오른다. 자나 깨나 하는 가족 걱정이 얼굴에 드러난 것이다. 할머니는 ‘일본에 있는 손녀에게 별 탈이 없어야 할 텐데…. 수능을 앞둔 막내 손주가 좋은 성적을 거둬야 할 텐데….’ 하며 기도하신다. 난 그 ‘걱정’이 할머니의 사랑을 표현하는 한 방식임을 잘 알고 있다.

 할머니를 닮았는지 나도 ‘걱정하는 것’에 자신이 있다. 언젠간 자신을 표현해보라는 선생님 말씀에 ‘나는 걱정이 많은 사람’이라고 답한 적이 있었을 정도다. 걱정 때문에 자책하다 제풀에 지친 날도 하루 이틀이 아니다.

 나는 언제 걱정을 하던가? 보통 쏟아야 하는 노력보다 얻고 싶은 ‘결과’에 욕심을 낼 때, 또는 나 자신과 타인에 대한 믿음이 부족할 때 유독 많아진다.

 최근 드는 걱정은 ‘늙어감에 따른 변화’다. 20대의 끄트머리를 걷고 있는 내게 ‘늙는다는 것’은 여느 때와는 또 다르게 다가온다. 그러면 자연스레 부모님에게까지 걱정이 이어진다. ‘내가 아프면 어떡하지? 혹시 부모님이 큰 병에 걸리면? 아플 때 내 곁에 아무도 없으면?’ 등등.
하지만 그렇게 한참을 걱정하고 나면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어쩔 수 없는 것을 구분할 수 있는 지혜가 생긴다. 예를 들면 이렇다. ‘난 지금은 건강하다. 잘 먹고 잘 쉬면 건강할 수 있다. 건강한 음식을 먹자. 의학기술도 발전하고 있다. 원래 몸은 계속 변한다. 영원한 것은 없다. 부모님도 나름대로 건강을 생각하고 계신다.’ 등.

 뒤돌아보면 30년 가까이 걱정과 함께한 보람이 있다. 걱정을 가만히 들여다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것도 난 나름의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별별 걱정을 할 수 있단 건 상상력이 풍부하다는 뜻이고, 여러 경우의 수를 따져 대비하려는 성향이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사실 걱정을 새롭게 받아들인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걱정’이란 단어가 주는 우울하고 무거운 느낌 때문에 툭 떼어버리고 싶은 약점으로만 여겨왔다. 그래서 얼굴에 걱정이 드러나지 않도록 애썼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여전히 나는 걱정을 한다. 그러나 쓸데없는 걱정의 ‘쓸모’를 받아들인다. 걱정을 떨치기 어려울 땐 오히려 걱정을 ‘구체적으로’ 해보려 한다. 걱정에 걱정을 더하고, 있는 힘껏 걱정해보는 것이다. 최악의, 조금 더 최악의 상황을 그려본다. ‘그 상황이 일어나면 과연 정말로 끔찍할까?’ 생각한다.

 하지만 걱정했던 일이 실제로 일어났던가? 내가 걱정했던 일들은 내 의지에 의해서든, 원래 일어나지 않을 일이었든 별 일 없었던 적이 많았고, 비슷하게나마 일어났더라도 내 마음을 무너뜨리진 못했다. 걱정을 하는 동안 자연스레 마음에 힘이 쌓이면서 일을 해결해나갈 수 있는 준비를 했던 것은 아닐까.

 걱정을 실컷, 신나게 펼친 뒤 따르는 후련함을 느껴보자. 걱정은 나를 강하게 만들고, 살아가는 힘을 주는 것 같다. 걱정은 나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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