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산 산막이마을에서

지금, 사람들은 청산으로 간다.

취재. 노태형 편집장

 세상 살다보면 숨 막힐 때가 어디 한 두 번이겠습니까!
“그래. 오늘만이라도 시름 좀 털어내고 살자.”며 털썩 주저앉는 여인의 얼굴에 솔바람이 스쳐 지납니다. 망세루(忘世樓), 세상 시름 잊는 곳이라니 그렇게 해야죠. 발아래, 배 지나간 자리에는 물결이 뉘엿뉘엿 간지럼을 태웁니다.
“나는 수풀 우거진 청산에 살리라~.” 목소리 큰 사내의 어설픈 노랫소리에 그늘이 내립니다. 아마 이루지 못한 꿈이 서글펐나 보죠. 마음은 늘 첩첩 산으로 달려가지만, 몸은 빽빽한 도시에 갇혀 있으니 지치기도 하겠죠. 그래서 산등성이를 타고 달려와 준 솔바람이 참 고맙습니다. 

 산막이옛길은 물이 길을 막으면서 생긴 산길입니다. 본래 산이 막고 있어 ‘산막이’라고 했는데, 물이 막고 설 줄 어찌 알았을까요. 1957년에 괴산댐이 생기면서 산골 오지사람들이 어쩔 수 없어, 산허리를 타고 넘나든 애환의 길이기도 하죠. 그리고 그 길이 지금은 청산 가는 길이 되었습니다.

 괴산의 산막이옛길은 사람들이 도시로 떠나면서 한 때 희미하게 사라져간 길이기도 하죠. 그 옛길을 다시 찾아내 산허리가 잡히는 대로 벼랑길을 만들었습니다. 꼬불꼬불 오르락내리락, 그렇게 십리를 걷다보면 마음이 툭 트이는 신바람 나는 길이기도 하죠. 무엇보다 그 산길에는 산과 물, 숲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합니다. 소나무와 바위, 그리고 바람을 따라 난 길에는 인공의 자연물도 세워두어 재미까지 더합니다.

 “마음이 쉬어지네. 마음이 쉬어져. 휴우~.”
지나는 행인의 말속에는 세상사 온갖 이야기가 묻어납니다. 참 힘겨웠던 모양입니다. 그래요. 현재를 산다는 건 자동차로 달리는 것과 같으니 어디 한시인들 맘 놓을 수가 있겠습니까. 빠르고 편리할수록 자꾸 위험해지는 세상이잖아요. 그러니 쉬어야죠.

 문득, 조지훈 시인의 짧은 시 한 편을 떠올립니다.
‘혼자서 산길을 간다/ 풀도 나무도 바위도 구름도 모두 무슨 얘기를 속삭이는데/ 산새 소리조차 나의 알음알이로는 풀이할 수가 없다 …하략….’
산길을 걷다보면 참 모르는 게 많습니다. 아니, 그동안 안다고 생각했던 게 모두 거짓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내 앎의 깊이가 개울물보다 더 얕다는 게 새삼스럽기도 하죠. 그래서 기쁩니다. 비로소 ‘몰라도 괜찮다.’는 걸 알게 되니까요. 속으로 웃음이 납니다. 아마 호탕하게 웃지 못하는 건 아직도 미망에 갇혀 있기 때문이겠죠. 그래서 가끔 산길은 지혜가 되고, 청산은 휴식이 되는지도 모릅니다. 휴식(休息), 산다는 건 숨 쉬는 것마저도 버거운 것인가 봅니다.

 괴산에는 참 많은 청산이 숨어 있습니다. 송시열 선생이 은둔했다는 화양구곡, 신선이 즐겼다는 선유동구곡, 경치가 아름다워 소금강이라 불리는 쌍곡계곡 등등. 어느 숨 막히는 날이면 은둔의 땅, 신선의 땅에서 숨 한번 쉬었다 오시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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