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발길 닿는 곳

글. 이이원


 이야기 하나.
 인명재천(人命在天)의 시대가 아니라 인명재차(人命在車)의 시대이다. 너도 나도 차를 가지고 다니기에 막히지 않는 곳이 없고, 교통사고 소식은 뉴스의 단골 메뉴이다.
 묵산 박창기 선진은 소태산 대종사가 출타를 할 때 걷거나 기차를 타는 것에 대해 늘 죄송하게 생각했다. 대종사를 자동차로 모셔야겠다고 생각하며 운전을 배우러 다녔던 묵산 선진. 어느 날 총부 구내를 거니는데 대종사가 “운전은 왜 배우려고 하느냐?”고 물었다. 묵산 선진은 우쭐한 마음으로 대답했다. “자동차를 사서 대종사님을 모시고 다니려고요. 그동안 자가용도 없이 걸어 다니시는 게 마음 아팠습니다. 제가 운전수가 되어 모시고 다니겠습니다.”
제자의 마음이 따뜻하게 와 닿을만한 일. 그러나 소태산 대종사의 음성은 무겁게 가라앉았고 단호했다. “그만두어라! 지금 우리나라의 형편이 어떤지 모르는가? 만약 내가 자가용을 타고 다니면 교도들의 돈으로 사리사욕을 채운다고 비난하지 않겠는가. 설사 창기가 자가용을 산다 해도 나는 타고 다니지 않겠다.”
 소태산은 직접 온 강산을 발로 걸으며 자비를 전해 주었다. 오늘 우리의 발걸음이 닿아야 할 곳은 과연 어딜까? 오늘도 부지런히 순교의 발걸음을 옮긴다.

 이야기 둘.
 교당 뒤편 쓰레기 배출장에는 폐지나 고물 등을 줍는 분들이 수시로 오는데, 그때마다 엉망이 되기 일쑤다. 자주 청소하고 정돈하지만 그때뿐인 경우가 많아 때론 원망의 마음이 들기도 한다.
 미소가 아름다운 고장 서산교당의 민타원 박종수 교도는 시장을 돌아다니며 폐지를 줍는다. 어느 날 사랑방 주변에 폐지가 많은 것을 보고 ‘저걸 주워 팔아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자.’고 친구와 의기투합한 것이다. 친구는 주위의 따가운 시선과 손가락질을 창피해하다가 금방 그만두었지만 민타원은 지금껏 10여 년동안 한결 같이 시장통을 누빈다. 그렇게 마련한 돈으로 여러 학교에 장학금을 보내고, 만나는 사람들에게 ‘복 짓는 법’ ‘불공하는 법’ 등 원불교를 전하는 ‘홍보대사’의 역할도 톡톡히 한다.
 교당이 새롭게 이사하여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 민타원은 폐지를 팔아 모은 돈을 까만 봉지에 싸서 불전에 올렸다. 그 돈을 모으기까지, 비록 신발은 닳고 닳았지만 마음엔 채워지는 법열이 가득했으리라. 그 돈은 하심(下心)의 정재였고 불연(佛緣)의 희사였다.
 민타원은 오늘도 맑은 미소로 수레를 끌고 폐지를 주워 모으며 불연의 씨앗을 뿌리고 있다. 그 자비의 웃음을 기억하고 은혜 입은 많은 사람들이 언젠가 구름처럼 몰려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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