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은혜이고 싶다

나무는 평생을 바라는 바 없이, 많은 생명들을 살리며 살아간다.
대종사님이 만들기 시작한 이 울창한 숲의 나무로 살고 싶다.

글. 한다익

 고등학교 때부터 재수를 하던 2015년까지,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많이했다.
 나는 ‘행복한 사람=쓸모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가장 쓸모 있는 사람은 단순히 유능한 사람이 아닌 세상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그때 떠오른 게 교무님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친구를 따라간 교당에서 만난 교무님은 늘 맑은 모습이었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었다. 하지만 한편으론 성직자이기에 포기해야 할 것들이 막연하게 두려웠다.

 재수를 끝낸 2015년 12월 말. 가장 친한 친구들과 3박 4일로 제주도 여행을 갔다. 밥을 먹으러 가다가, 이름 모를 숲길을 걸었다. 한참을 걷느라 피곤해진 탓에, 쉼 없이 떠들던 우리는 이내 조용히 길을 걸었다. 울창한 숲이 머리 위로 뻗어 있었고, 발밑엔 낙엽과 부엽토가 뒤섞여 기분 좋은 흙냄새가 났다. 발걸음은 폭신폭신한데, 나뭇잎 사이로 햇살이 부서지면서 바람이 선선히 불어왔다. 그런 풍경 속을 친구들과 걷고 있었다. 마음이 넉넉하고 평화로웠다.
나는 나무와 풀이 있는 풍경을 보면 참 좋은 기분이 든다. 나무는 평생을 바라는 바 없이, 뭔가를 했다는 생각도 없이, 많은 생명들을 살리며 살아간다. 숲이 좋은 이유는 그런 나무들이 모여있기 때문일 것이다.

 법당에 있을 때도 숲에 있을 때의 넉넉함과 평화로움이 느껴지곤 한다. 나는 원불교가 숲과 닮아있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이 세상을 낙원으로 만들기 위해, 일체 생령을 낙원으로 인도하기 위해 교무님과 교도님들은 바라는 마음 없이, 했다는 상이 없는 선(善)을 실천하며 살아가신다. 나무가 산소를 만들듯, 사람이 은혜를 만들고 숲이 생명을 살리듯, 원불교는 사람들의 마음을 살린다.

 산다는 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매 순간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관계가 은혜가 될 때, 제대로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관계 속에서 은혜를 느낄 때 가장 행복하고 감사하다. 그런 느낌은 ‘뭐든지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이어진다.

 대종사님은 세상 모든 것이 은혜의 관계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씀하셨다. 모든 관계를 은혜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은혜를 발견하고 느끼고 싶다. 누군가의 은혜이고 싶다. 나는 대종사님이 만들기 시작한 이 울창한 숲의 나무로 살고 싶다. 숨 쉬듯 세상에 은혜를 생산하는 크고 건강한 나무가 되어 살고 싶다.




자연의 색 물감 한 방울

힘들더라도 좀 더 따뜻하게, 친근하게,
포용력 있게 살아내야겠다.

글. 송원도

 나는 서울 도심 한가운데에서 군복무 중이다. 말 그대로 빌딩들이 우후죽순 서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생활하다보면 많은 것들이 그립다. 가끔 새벽에 옥상에 올라 야경을 보고 있으면 많은 생각이 든다. 처음엔 ‘참 예쁘다.’고 생각하다가도 볼수록 참 바쁘고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그럴 때면 어서 제대해서 바쁘게 살고 싶기도 하고, ‘삶이란 이렇게 치여 사는 것인가.’ 하는, 여러 생각이 든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가끔은 이곳을 떠나고 싶다. 나가서 다른 공기를 쐬고 싶다. 사람이라면 기분전환이 필요할 때가 있는 것이다. 이곳을 벗어나 완전히 다른 곳에 가고 싶다. 회색에 익숙해진 눈과 폐에 자연의 색 물감 한 방울을 적시고 싶다. 항상 같은 곳에서 같은 일을 하다 보니 무거운 생각이 많이 든다.

 울창한 숲에 간다면 어떨까? 시원한 공기와 맑은 물, 이끼 낀 바위와 뺨을 스쳐가는 바람, 녹음 진 그늘과 나무냄새, 고요.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자유로워진다. 급박한 현실에 누군가 바늘로 작은 구멍을 내서 여유를 불어넣어주는 것 같다. 그러고 나면 일을 하고, 사람을 만나는 생활 가운데서도 조금 더 차분해질 수 있고 포용력이 생긴다.

 어쩌면 삶에 필요한 기술이 여기에 있을지 모르겠다. 살다보면 현실에 매몰돼 크게 보지 못하고 눈앞의 것에 급급해하기 마련이다. 몸과 마음이 지치고 관계도 틀어지기 일쑤다. 하지만 지나고 나서 되돌아보면 좋은 기억이든 나쁜 기억이든 ‘추억’은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던가. 힘들었던 일 덕분에 얻은 것도 있었다. 삶 속에서 이 점을 잊지 않는다면 힘든 일이 있어도 버텨낼 수 있는 힘이 생긴다. 고된 일이 닥쳐도 이 일이 지나간 후를 생각해보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은 것인지 판단할 수 있는 지혜가 생긴다. 보는 법에 따라 삶이 바뀔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나는 종종 마음에 평온을 줄 수 있는 어떤 대상을 상상함으로써 현실에서 한 발자국 떨어져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을 갖곤 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쫓기지 않고 바로 설 수 있는 마음이다. 가는 길이 힘들더라도, 행여 길을 헤맬지라도, 그것은 과정이면서 내 삶 전체를 이루는 하나의 요소가 되는 것이다.

 오늘도 순간순간 많은 것들이 파리처럼 내게 닥쳐온다. 그것들은 피로와 권태를 동반하지만 반대로 보면 다 하나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것들을 단순히 일로만 취급하면 당연히 귀찮은 것이 되겠지만, 인생의 시야로 본다면 나를 형성하는 하나의 사건들인 것이다. 좁게 보지 않고 넓게 보면 인생은 하나하나 다 아름답다.

 여유로운 마음을 가져야겠다. 넓게 바라봐야겠다. 그래서 작은 것 하나에도 의미를 발견해야겠다. 그리고 좀 더 따뜻하게, 친근하게, 포용력 있게 살아내야겠다. 힘들더라도 삶을 아름답게 바라봐야겠다.

 곧 휴가철이다. 나도 휴가를 가고 싶다. ‘간다면 어딜 갈까? 누굴 만나서 뭘 할까?’  이 생각만으로 삶은 층분히 아름다워지는 것이다.





나의 만고강산

산은 가끔 내게 따듯한 잔소리를 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만 좀 뛰라고, 조금 늦어도 이렇게 잘 살 수 있고 조금 더디어도 괜찮다고.

글. 이지혜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변함없이 존재하는 자연.
지나는 일상에서 자연을 볼 때면 ‘누구의 작품일까?’라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요즘 나는 자연과 가깝지 않은 것 같다. 매일 똑같은 삶을 살아가느라 바쁘기 때문이다.

 어릴 적 나에게 휴일은 조금 특별했다. 휴일이 다가올 때면 우리 가족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가고 싶은 여행지를 놓고 회의했다. 서로에 대한 배려인지는 모르겠지만, 의견충돌은 거의 없었다. ‘이번엔 이곳으로, 다음엔 여기로 가보자!’ 하며 즐거워했다. 날씨, 유명한 장소 등을 공유하며 정한 여행지에는 항상 자연이 있었다. 덕분에 나는 가족들과 산과 바다에서 많은 추억을 쌓았다.
 바다에 갈 땐 차를 타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아름다운 풍경을 편하게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산은 시작부터 험난했다. 특히 오르막길을 오를 땐 덥고 힘들었다. 또 벌레들은 어찌나 나를 좋아하는지…. 그런데 왜 나의 기억에는 오히려 힘들게 올랐던 산이 더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을까?
 아마도 힘들게 산을 오르고 나면 어느새 내 눈앞에 보이는 숲! 숲이 있어서였다. 울창한 숲속에서는 말없이 걷기만 해도 마치 누가 날 위로해주는 듯 걱정거리가 정리됐다. 새소리, 흙과 나무 냄새, 산 공기 덕분에 마음도 평안해졌다. 숲이 내게 주는 작은 선물들이었다.
이렇게 한 걸음 한 걸음 걷다 보면 어느 순간 산 정상에 도착한다. 정상에 선 순간 내 마음은 성취감과 자신감으로 충만하다. 산꼭대기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마시는 물 한잔은 내게 감사함을 선물해준다. 나뿐만 아니라 누구나 한 번쯤은 이러한 기분을 느껴봤을 것이다. 모두 내 어린 시절 좋은 추억들이다.

 성인이 된 나에게 지금도 산은 오묘한 존재다. 어렸을 때는 놀이터 같았고, 어른이 된 지금은 휴식처로 다가온다. 10년, 20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고 내 곁을 지켜준 산에 말할 수 없이 많은 것을 배운다. 맑은 공기를 마시며,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그늘을 얻는다. 산은 가끔 내게 따듯한 잔소리를 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만 좀 뛰라고, 조금 늦어도 이렇게 잘 살 수 있고 조금 더디어도 괜찮다고.

 요즘 우리는 우리만의 편의를 위해 눈에 띄게 자연을 훼손하는 것 같다. 그것이 정말 우리를 위한 걸까? 오히려 날 위로해 주는 친구 같은, 듬직한 아빠 같기도 하면서, 잔소리하는 엄마 같은 존재들을 하나씩 사라지게 하는 게 아닐까? 이미 우리는 자연에게 많은 것을 받았기에, 감사해야 한다. 나는 자연을 자유롭게 보고 즐기며 몸과 마음을 치유할 수 있었다. 이미 자연으로부터 모든 것을 조건 없이 풍요롭게 받았다. 우리의 친구이면서 아빠, 엄마와 같은 존재인 자연에 관심을 가지고 보호해야겠다. 자연의 행복과 우리들의 행복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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