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천은 원로교무 종교의 시대화 생활화 대중화는 진행형

대담. 노태형 편집인
정리. 장지해 기자

 그에게는 소태산 대종사에게 맞은 기억이 두 번 있다.
한 번은 열쇠를 가지고 놀다가 어머니(박길선 선진, 소태산 대종사 장녀)에게 빼앗긴 후 떼를 쓰던 날. 그날 네 살짜리 어린 천은은 대종사에게 엉덩이를 두들겨 맞고 나서야 간신히 울음을 그쳤다. 그리고 아홉 살 때, 지금은 원광대학교가 된 당시 논자락에서 불장난하는 선배들의 모습을 구경하다가 종아리를 맞았다.
 “두 번째 맞을 때, 대종사님께서 불놀이를 한 사람, 구경한 사람, 그 학부형들까지 다 소집을 하셨어요. 그 전에는 회초리가 부러질 때까지 때린 적이 없었는데, 아마 인연의 흔적을 강하게 남기려고 하셨던 것 같아요.” 소태산 열반 2개월 전의 일. 그러기에 송천은 원로교무는 대종사가 열반의 길을 미리 준비했음을 확신한다. 그때 당시의 시국 상황도 그러했다.
 송 원로교무에게 대종사는 외할아버지, 정산 종사는 백부, 주산 종사는 아버지다. 어찌 보면 원불교 인맥(?)으로는 최고라고 할 수 있을 터. 하지만 그에게 대종사란, 외할아버지라는 혈연보다도 ‘원불교를 통째로 만들어 내신 분’이라는 법연으로 더 크게 와 닿는다는데….
총부 안에서 뛰어놀던 어린아이가 어느덧 여든이 훌쩍 넘은 요즘. 세월이 흐른 지금도 원불교 교리의 시대화·생활화·대중화에 대한 강한 관심은 진행 중이다.

 여전히 웃는 모습이시네요.

 “많이 웃는 편이지요. 모든 걸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항상 웃게 돼요. 대종사님께서 ‘세상 만물이 다 부처’라고 하신 말씀은 결국 긍정적인 면을 드러내자는 거잖아요.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긍정적인 현상만 있진 않지만, 나타나는 면만 보면 좋은 걸 만들어 낼 수 없어요. 가능성을 봐야죠. 세상을 긍정적으로 만들 가능성이요.”
 세상을 긍정적으로 만들어가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처처불상 사사불공’에 집중하는 송 원로교무. 그가 정리한 ‘처처불상 사사불공의 실천적 의미’는 한 근원 한 이치 사상, 함장불 사상, 전체불 사상, 모두 은혜 사상, 만물이 죄복의 권능자라는 사상, 만물 선용론 사상, 만물 외경 사상, 궁극 평등론 사상, 자타력 병행론 사상, 신앙수행 병행론 사상 등 총 열한 가지다. 무엇보다 생활 속 건설을 강조한다.


 대종사님과의 추억도 많으시죠?

 옛날에 대각전 옆에 조그만 연못이 있었는데, 겨울이 되니까 꽁꽁 얼어요. 그 얼음 안에 물고기가 갇혀서 꼼짝 못하길래 친구와 구해주기 작전을 펼쳤죠. 대야에 물고기를 건져서 대종사님께 가져갔더니 엄청 귀한 바나나를 상으로 주셨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까 연못에 얼음이 얼었다고 물고기가 죽는 게 아니더군요.(하하하) 대종사님은 그걸 알고 계시면서도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는 그 마음을 예쁘게 봐주셨던 것 같아요.”
 그가 네 살 때의 기억 한 가지 더. 졸래졸래 어른들을 따라 들어간 서선방(현 공회당 자리)에서는 목우십도송 공부가 시작되었다. 정산 종사가 읽고 대종사가 보설을 하는 자리. 재미를 느끼지 못한 어린 천은은 그 자리를 벗어나려고 문을 나섰다. 그리고 그 문 밖에서 “아무리 진리를 설해도 재미를 못 붙이는 일반인의 모습이 꼭 저렇다.”는 비유설법을 들은 게 생생하다.


 원불교와 불교의 관계에 대한 논의가 많습니다.

 “대종사님은 기본적으로 서가모니 부처님을 성중성(聖中聖)이라고 하셨고, 불교를 연원 종교로 존중하셨어요. 그런데 대종사님께서 만들고자 했던 새 회상이 기존 불교와는 방향이 좀 다른, ‘넓은 의미의 새불교’라는 점도 알아야 합니다. 이는 원불교의 초기부터 있던 개념이에요. 통(通)불교, 통종교, 민족종교적 성격까지 지닌 게 바로 ‘원불교’죠. 원불교는 친불교적이고, 대립적인 입장은 없습니다.”
 불교의 발생지인 인도에서 오히려 불교가 쇠퇴하게 된 원인에 대해 ‘불교만의 독창성과 창의성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한 어느 유명 일본 불교학자의 이야기를 인용하는 그. 결국 인도에서 서가모니 부처가 힌두교의 한 성인 정도에 그치고만 선례를 답습할 필요는 없지 않겠냐는 것이다.
 “원불교는 ‘불교의 연원불교이자 통불교이면서 새불교, 그리고 민족종교이지만 세계종교를 지향한다.’고 정리하면 어떨까 싶어요. 그 모든 걸 하나로 통합하는 ‘원불교’로요.” 

 송 원로교무는 최근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원불교와 증산교의 관계’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대종사가 증산 선생에 대해 ‘선지자로서 훌륭하다.’고 표현한 내용은 있어도, 스승으로 삼았다는 근거는 역사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다는 것. 잘못된 정보와 추측으로 인해 원불교의 고유성이 상실되는 것에 대한 강한 우려다. 그뿐 아니라 소태산 대종사는 자수자각의 뚜렷한 역사를 공유하고 있는 바, 근거 없이 혼란을 일으키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시대화·생활화·대중화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대종사님께서 말씀하신 시대화·생활화·대중화는 단순히 어느 한 시점에만 적용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구적으로 적용 가능한 하나의 소신이에요. 이것에 대한 좀 더 깊은 이해가 우리 내부적으로 되어야 할 것 같아요. 4차 산업혁명, 5차 산업혁명…. 그렇게 아예 다른 세상으로 변화하는 상황 상황에 맞게 잘 적용시키자는 게 시대화·생활화·대중화죠. 과거에는 장례를 치를 때 상여를 맸지만 이제는 차량으로 잘 모시잖아요. 대종사님 시대에 했던 거라고 언제까지나 계속 유지하는 건 맞지 않아요. 세상은 계속 변하니까요. 물론 원불교에서 이미 바꿔가고 있는 것도 있지만요.”
 
 시대화·생활화·대중화와 관련해 특히 그가 강조하고 싶은 것이 있다. 그건 바로 ‘언어’와 관련된 것들. 예를 들어 한자어가 주로 쓰인 비문도 다시 번역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도 모르는 말이 많다.”는 그의 말은 아마도 한자에 익숙하지 않은 젊은 세대를 배려하는 겸손한 표현일 터. <원불교전서>속 <불조요경>만 해도 한글 번역본이 먼저 나오고 한자원문이 부록으로 첨부되어 있는 형태로 진작부터 정리가 되어있음에도 불구하고, 의식상으로는 한자가 더 우선시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100주년기념대회 때 10개 언어로 교서가 번역되었잖아요. 사실 그때 현재 우리 경전도 현대어로 재정리 되었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원래는 11개국 언어로 결정 되었는데 알 수 없는 이유로 한글 번역만 빠져버렸어요. 은생어해 해생어은, 오가의 소유, 어변성룡…. 우리끼리 쉽게 쓰는 말들이 사실은 절대 쉬운 말이 아니거든요. 틀에 묶어놓으면 시대화·생활화·대중화가 될 수 있겠어요? 풀어야 해요. 쉬운 말로 풍부하게, 그 뜻이 나타날 수 있게, 아이라도 읽으면 뜻이 살아날 수 있게. 그래야 자꾸 번져나갈 수 있어요. 시대화·생활화·대중화를 가지고 늘어져야 해요.”


원불교가 현대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요?

 “작은 규모에 비해 사회적으로 상당히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규모와 조건이 매우 작은데 이만큼 해가는 게 절대 쉽지 않거든요. 원불교에 현재 여러 기관이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데, 다양한 분야에서 잘 힘쓰고 있는 줄로 압니다. 모두가 좋은 성과를 이루기를 바라죠. 물론 더 충실한 발전이 있어야 할 테고요.”
 그는 원불교가 아직 작은 집단이기에 잘만하면 각자 모두가 성공의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말한다. 작은 일이라도 성공을 해본 사람에게는 또 다른 아이디어가 솟아나기 마련이고, 그렇게 점점 더 큰 성공과 보람을 이뤄갈 수 있다는 것. 그야말로 ‘이소성대’인 것이다.


융산님께 격려전화를 받은 후진이 많다던데요.


 “많은 사람에게 연락은 못하지만, 교단 내에서 잘하고 있는 기관이나 후진들의 소식을 들으면 챙겨서 전화를 하려고 해요. 잘하는 곳에 관심을 가져주고 격려하는 일이 더 성장할 수 있는 힘을 얻는 계기가 되기도 하는 것 같아서요.”
 후진들에게 ‘정신 좀 차리라.’는 의미로 전할만한 당부를 부탁하자, “원불교에 와 준 것 자체만으로도 귀한 사람들.”이라고 말하는 그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좋게 될 길이 열릴 가능성이 높아져요. 처처불상 사사불공 정신과도 일맥상통하는 이야기인데, 충만한 불성이 있음을 철저히 믿으면서 그 불성을 통해 뭔가를 만들어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에게는 당연히 일이 잘 될 가능성이 높아지지 않겠어요? 후진들이 긍정적인 마음을 갖고 스스로 길이 되어주길 바라요.”


평생 교역에 임하면서 기준 삼는 가르침이 있으신가요?

좌우명이야, 원불교 경전에 나온 게 다 좌우명이죠. 못해서 걱정이지 잘만 하면 거기에서 삶의 답이 다 나와요.”


도가 뭘까요?

“도는 일원상이라는 본체인데, 그 본체를 어떻게 궁글리느냐에 따라 도의 실행이 달라지는 것 같아요. 운전을 잘하면 바퀴도 잘 굴러가서 길을 잘 갈 수 있지만, 아무리 좋은 바퀴라도 못 굴리면 제 역할을 못하게 되잖아요. 우리의 머릿속에 극락이 다 들어있어요. 좋은 걸 많이 생각하면 좋은 일이 비칠 것이고, 그렇지 않고 어두운 것만 생각하면 어둡게 될 거예요.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궁글릴 것인가, 그걸 잘 연마하는 게 도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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