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에서 하얀 부처님을 만나다
취재. 노태형 편집장

해발 2500m, 두 발을 땅에 딛고 섰지만 숨이 자꾸 가빠옵니다.
세상을 너무 급하게 살았나 봅니다. 너무 바삐 돌아다녔나 봅니다. 너무 많은 짐을 지려했나 봅니다. 그런 온갖 욕심과 잡념들 이제 내려놓으려고 합니다. 히말라야에 숨은, 은둔의 나라 부탄에서 말이죠.

부탄의 모든 길은 굽이져 있습니다.
자연이 만든 지형을 따라서 그대로 길을 내다보니 직선의 길을 만나기가 쉽지 않죠. 끊임없이 돌아가는 길을 따라 사람들은 천천히 발걸음을 옮깁니다. 그게 더 빠른 길이라는 듯합니다.

세상은 이 나라를 최빈국 중 하나라고 규정하지만, 그들의 마음속에는 가난이 없습니다. 아니, 삶의 짐을 덜어내는 대신 부유함을 채우는 듯도 합니다. 언덕을 따라 세워진 집들은 검박하지만, 결코 누추함을 보이지 않죠.

아이에게 카메라를 들이댑니다.
아이의 표정이 금세 밝아집니다. 이는 태생적으로 상대에 대한 배려가 가득 고여있기 때문일 겁니다. 누군가 말합니다. “아이의 눈빛이 하늘을 닮았다.”고요. 낯선 할아버지에게도 카메라를 들이댑니다. 순간, 주름진 얼굴에 미소가 흐릅니다. 히말라야의 오래된 만년설이 삶의 강을 타고 흐릅니다. 이곳 사람들은 모두 이렇게 행복한가 봅니다.
부탄의 수도 팀부에는 ‘고와 키라’(그들의 전통복장, 치마형태)를 입은 남녀들의 온화한 표정이 넘실대죠. 도시에 신호등 하나 없어도 잘만 흘러가는 삶이 자꾸 부러워집니다.


부탄에서의 여행은 대부분 절(사원) 구경이라고 합니다. 
인구 75만 명 중 80% 정도가 불교 신자인 불교국가이기에 당연한 것이겠죠. 군인보다 승려가 더 많다는 것에서도 그들의 신앙심을 엿볼 수 있습니다. 특히 각 도시마다 군사방어적 목적으로 지어진 요새 형태의 드종(Dzong)은 종교적 기능과 행정적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는 곳이죠. 이는 종교와 행정 그리고 삶이 하나의 형태로 엮여져 있음을 보여줍니다.
수도 팀부에 있는 타쉬쵸 드종을 비롯해 옛 수도인 푸나카에서 아버지의 강과 어머니의 강 사이에 아름답게 자리 잡은 푸나카 드종, 그리고 난공불락의 요새 파로 드종이 대표적이라네요. 부탄에는 2000여개의 드종이 있다고 합니다.

특히 탁상사원은 빼놓을 수 없는 곳입니다.
‘호랑이의 보금자리’라 불리는 탁상은 17세기에 세워졌는데, 700m 벼랑에 위치해 아찔하기까지 합니다. 해발고도만도 3100m에 이르죠. 8세기 경, 부탄에 불교를 전한 파드마 삼바바(일명 구루 린포체)가 호랑이를 타고 이곳에 와서 수도 정진했다는 전설이 어린 곳. 이곳은 부탄 불교의 최대 성지이기도 합니다. 부탄에서 구루 린포체는 어느 사원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부탄의 또 다른 부처님입니다.

히말라야의 하얀 부처님, 설산이 보고 싶었습니다.
팀부에서 푸나카로 넘어가는 도출라고개(3159m)에 이르자 마음이 먼저 바빠집니다. 어쩌면 결국 욕심도 미련도 내려놓지 못했던 거죠. 그래서일까요? 본래 우기에는 좀처럼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는 설산을, 결국 보지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습니다. 그렇게 여행에 마침표를 찍으며 비행기에 올랐죠. 
욕심을 내려놓으면 이루어지나봅니다. 갑자기 창밖으로 펼쳐진 히말라야의 설산! 많은 사람들에게 설산을 보여주고 싶었던 간절한 마음을 비행기 속에서 이뤘네요. 그렇게 부탄에서 ‘행복’을 실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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