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교무
 
글. 노태형 편집인

 교역의 길에 첫발을 내딛는 ‘부교무’라는 말에는 설렘이 가득합니다.
대학 학부과정 4년과 대학원 2년 과정, 혹 간사 시절까지 밟는다면 8년을 지내야 겨우 들을 수 있는 호칭이니 꿈은 또 얼마나 클까요. 세상 모든 사람을 품어낼 기상은 신선하다 못해 고귀하고 아름답습니다. 대체로 30살 전후의 나이니 젊고 푸르죠.

 부교무.
 이제 겨우 첫발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어설플까요. 교육과정에서 보았던들 얼마나 보았을 것이며, 현장을 안다고 해야 얼마나 알까요. 마치 깨어지기 쉬운 계란 같고, 멍들기 좋은 사과 같습니다. 그래도 꿈은 푸르른 하늘입니다. 그러기에 조심조심, 하나하나 가르치는 것이죠. 그렇게 또 4년을 지나야 겨우 ‘부교무’라는 딱지를 뗍니다.

 부교무.
 그 과정은 지난합니다. 좇는 꿈은 하늘이지만, 걸어야 하는 길은 맨땅이죠. 가르침은 지시가 되고, 훈육은 타박이 되고, 보호는 구속이 되기 십상입니다. 하늘의 꿈은 시간을 따라 점점 낮아져 현실에서 고난의 꽃으로 피기도 할 테죠. 가만히 생각하면 누구나 거쳐야 했던 ‘인고’의 부교무 시절이 있었습니다.

 부교무.
 현재 110명의 부교무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선배 교무들을 모시고 살아갑니다. 배우는 것이죠. 또는 보조한다고도 합니다. 그러니 배움을 주는, 즉 가르치는 교무들의 자세는 늘 하늘이 됩니다. 본대로 배우니까요.
지금 교단은 인재양성에 목이 탑니다. 아세요? 그 부교무가 바로 우리가 애타게 찾던 그 인재라는 걸 말이죠. 부교무가 행복하면 원불교의 미래도 행복해 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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