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언어로 ‘평화’를  이야기하다

취재. 장지해 기자


 김선명 교무를 오랫동안 알던 이들에게, 재작년 그가 원불교시민사회네트워크(이하 원씨네) 개척교화 발령을 받아낸 행보는 약간 의아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늘 가슴 깊은 곳에 품어온 한 생각이 있었다는데….

 “교단이 새로운 100년에 들어서면 지난 100년을 성찰하고 기존의 관성에서 벗어나 새로운 교화 모델이 필요할 거라는 고민을 많이 했어요. 이건 교화자라면 누구나 하는 고민이기도 하죠. 그런데 그러려면 기존의 교화 패러다임을 벗어난 모델이 필요하잖아요. 더 이상 고민만 하지 말고 내가 시도를 해보자는 마음을 먹고 ‘교법의 사회화’라는 측면에서 외연을 확장해갈 교화방식으로 시민사회네트워크 개척교화를 지원했죠.”

 그렇게 원씨네교당 주임교무를 시작한지 반년이 막 지나자마자 시작된 사드반대와 성주성지 수호활동. 당시만 해도 이렇듯 길고 험한 야전(?)으로 나서게 될 줄 본인도, 교단도 상상했던 일은 아니다. 여름과 가을, 그리고 봄을 지나 다시 여름을 맞이하며 10개월을 넘어서는 사이, 교단의 많은 재가·출가교도들의 격려와 지지, 때로는 우려 섞인 목소리는 모두 현장에서 뛸 수 있는 큰 힘이 되었다.

 작년 8월부터 지금까지 매일매일 급박하게 달려오느라 제대로 쉬지도 못 했겠다는 질문에 “현장 상황에 적응하다보니 토막잠을 잘 자는 습관이 생겼다.”며 웃어 보이는 김 교무. 성주성지 수호의 최전방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에게, 평화란 과연 어떤 의미일까?


● 요즘 한 숨 돌리고 계신가요?
“정권이 바뀌면서 무조건적이고 급박한 상황은 잠시 멈춰진 상태에요. 또 사드장비 일부가 불법 반입되었기 때문에 앞으로는 정치적으로 해결하는 게 중요해졌죠. 현재는 소성리 현장과 서울 현장에서의 광화문 평화행동, 그리고 종교사회시민단체 등과 연대해서 국민적 여론과 공감대를 만듦으로써 정부에게 새로운 협상의 서포트 역할을 하려고 하고 있어요. 그것이 한반도 안보를 지키는 것이고 나아가 성주성지를 지키는 일이니까요.”
여기서 잠깐, 지난 3월 11일에 진밭교 철야기도를 시작하게 된 뒷이야기 한편이 흥미롭다. 현재 사드가 배치된 (구)롯데골프장이 위치한 달마산은 정산 종사가 소태산 대종사를 만나기 위해 구도의 길을 걸었던 곳이다. 이에 김 교무는 구도길을 순례할 수 있게 해 달라는 요구를 끊임없이 해 왔지만 돌아오는 답이 없던 터. 가능 여부의 답을 줄 때까지 기다리겠다며 그저 종교적 신념에 바탕해 자리를 깔고 앉았던 것이 진밭교 천막교당을 만들어내고 24시간 철야기도를 하게 하는 변곡점이 되었다는 것이다.

● 10개월 동안의 성과는 뭘까요?
“원불교 100년 역사 속에서, 이렇듯 긴 시간을 지속해 온 일이 또 있었나 싶어요. 100주년기념대회를 준비할 때보다 언론에 수십 배 더 노출이 되었고, 또 ‘원불교는 평화입니다’라는 슬로건을 통해서 사회에 평화를 위한 운동을 하는 원불교라는 각인이 된 것이 성과죠. 그러나 무엇보다 큰 성과라면, 원불교가 더 이상 광화문광장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는 점 같아요.”
작년 9월 12일, 광화문광장에서 ‘평화명상기도회’가 진행될 당시 비가 내리는 날씨에도 흐트러짐 없던 재가출가 500여 명. 그 모습은 많은 시민과 기자들에게 꽤 묵직한 이슈가 되었다. 앞으로 어떤 어젠다를 가지고도 광화문광장에서 원불교 법회를 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은 것은 강소종교로서의 원불교에게도 큰 기회와 경험이 되었다는 것.

● 종교의 사회참여에 대한 반응이 엇갈리기도 합니다.
“종교의 사회참여에 대해서는 저도 많은 고민을 했어요. 그런데 종교 각각에 존재하는 사랑, 자비, 은혜라는 가르침들은 시대와 현장에 따라 때로는 자유, 때로는 정의, 때로는 민주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왔잖아요. 외피를 바꿔 입어도 그건 결코 사랑이나 자비, 은혜와 다른 이름이 아니죠. 교법의 사회화라는 측면에서 볼 때, 세상 각각의 현장에 정말로 예수님과 부처님과 법신불의 진리가 구현되고 있는가에 대한 심판자 또는 활동가로서 우리가 현장에 있는 것 아닐까요? 서로의 생각이 하루아침에 일치될 순 없겠지만, 대종사님께서 밝혀주신 이치와 공부 표준에 맞는지 안 맞는지를 고민하다 보면 서로 간극을 좁혀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러한 적극적인 사회참여 활동 역시 시작 단계잖아요. 어찌됐든 생각의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교법을 잘 담아내야겠죠.”

● 원불교에 있어서 사드반대란 어떤 의미일까요?
“원불교의 사드반대는 성주성지수호의 문제와 맞닿아 있어요. 역으로 표현하면, 원불교가 사드 반대하지 않으면 성주성지를 잃어버리는 거죠. 국가 안보 문제를 떠나서 그건 분명한 사실이에요. 2009년에 KCRP에서 ‘모든 종교의 본질은 평화를 지키는 데 있다’고 했는데, 그런 측면에서 보면 원불교도 전쟁무기인 사드를 반대하는 게 지극히 당연한 거죠. 그동안 우리가 국가의 안보정책에 따라 한남동이나 삼동원을 다 내주었지만, 성지는 또 다른 의미잖아요. 그렇게 반문하고 싶어요. 사드반대 하지 않고도 성주성지 지킬 수 있느냐고요. 그래서 ‘전쟁반대 사드반대 오직평화’를 외치고 있는 거지요.”

● 소성리의 평화운동 모습은 굉장히 생생약동하던데요.
“요즘 시민운동은 예전과 달라요. 과거에는 몇몇 운동가가 주도했다면, 요즘은 누구나 함께하는 참여형 시민운동으로 전환되어가고 있지요. 소성리에서의 평화축제 역시 많은 사람들이 재능기부를 해주면서 다양한 재미가 만들어졌어요. 그렇게 하니까 동력이 끊이지 않을 수 있었던 거죠. 투쟁현장이라고 하면 보통 삭막하고 칙칙한 모습을 떠올리기 쉬운데, ‘즐기게, 즐겁게.’ 그런 문화를 만들어 가는 거죠.”
소성리 마을회관 입구에 쌓인 알록달록 돌탑은 이곳을 방문하는 이들이 반드시 거쳐가는 포토존이 된 지 오래이고, 생수와 컵라면 등 다양한 부식거리는 현장에 함께하지 못 하는 사람들이 보내는 마음의 크기만큼이나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쌓여간다. 누구나 함께 즐기고 나누는 현장인 것이다.

● 원씨네 활동을 시작하면서 특히 염두에 둔 게 있나요?
“기존 교단의 정서와 원씨네 활동의 정서가 약간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을 해요. 그게 우리가 극복해야 할 과제이기도 하죠. 그러기에 더욱 원씨네교당 주임교무로서 활동가들에게 전문성, 연대성, 교법성을 강조했어요.”
각각의 분야에서 전문성을 가지고 시민사회활동을 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교단 내 NGO의 시초인 봉공회를 비롯한 재가 4단체와의 긴밀한 연결이라고 생각했다는 김 교무. 게다가 활동 면면에 우리의 교법이 묻어나지 않으면 그건 ‘원불교시민사회네트워크’로서의 정체성을 제대로 드러낼 수 없는 것이 자명했다. 교단의 초창 정신에 더욱 깊이 다가가고자 월말통신 등 초기교서를 공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 원불교의 평화를 정의한다면요?
“원불교의 평화는 ‘은혜를 확인하고 깨달아가는 과정’인 것 같아요. ‘사드말고 평화’라는 슬로건에서 단순히 보면 평화란 ‘전쟁이 없는 상태’라는 기계적이고 사전적인 의미로 해석이 될 텐데, 이찬수 서울대학교 HK교수가 평화에 대해 ‘폭력을 줄여가는 과정이 평화’라고 한 이야기가 참 와 닿더라고요. 우리 원불교에서는 관계와 관계가 은혜로 맺어져있다고 이야기하잖아요. 그 은혜의 관계를 확인해가는 과정이 원불교가 추구하는 평화인 것 같아요.”

● 사회를 향한 원불교의 모습에 대해서도 고민이 많습니다.
“다양한 통로로 문을 열어갈 때 우리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만 맞이하려고 하지 말고, 더 활짝 열어버려서 내가 세상으로 뛰어 나아가려는 노력을 해야 할 것 같아요.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만의 언어가 아닌 세상의 언어로 평화를 이야기 할 수 있어야 하고, 몸과 마음이 함께 하는 모습을 보여줘야겠죠. 대종사님께서 대각 후 9인제자들과 종교적인 결속 기도보다 저축조합, 방언공사를 먼저 하셨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커요. 대종사님은 민중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현실에 눈감지 않고 즉각적으로 함께 행동하셨어요. 당면 과제에 소홀하지 않으셨던 거죠.”

● 지난 10개월이 교무님에게 갖는 의미는 뭘까요?
“4월 26일에 사드 장비가 반입되던 날, 경찰은 8천명이 배치되었는데 지역주민들과 교무님은 겨우 80여 명이었어요. 눈 앞에서 장비가 들어가는데도 무력하게 당할 수밖에 없는 제 자신이 너무 처절해서 정말 많이 울었죠. 하지만 그런 아픔도 있는 반면, 최대의 정력을 다해서 일과 기도를 하고 정말 많은 사람들과 원불교 교무로서 만날 수 있었던 소중한 최고, 최대의 시간인 것 같아요. 대종사님의 법을 만났기 때문에 교무로서 이런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거잖아요. 그저 감사하죠.”

● 특별한 가치관이 있다면요?
“그저 처음 뜻을 잃지 않고 사는, 초지일관하는 한결같음이 제가 지향하는 가치에요. 혹 내 잣대로 재단하고 있는 건 없나, 정말로 명령지 하나만 받으면 어디든 가서 살 수 있는 출가초심을 가지고 있나, 낱 없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나 하는 것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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