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서원은?

우리 모두가 진실로 대종사님의 법대로 살아가고
있는가를 다시 생각해본다.

글. 김덕수

중국의 사드보복이 날로 가중되고 있다. 이 와중에 신문과 방송은 새로운 대통령을 뽑는 것과 관련한 보도를 종일 내보내고 있다. 참 바쁜 세상이다. 또 이 땅의 청년들은 이생포(이 생은 포기한다), 이생망(이 생은 망했다)이라는 신조어로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 있다. 학교에서 교육받은 만큼 일하고 싶다는 욕망이 자꾸 사그라지고 있는 현실이 슬프다.
그리고 트럼프 미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주석과의 만찬 직전에 시리아 폭격을 명해 많은 인명 사고가 났고, 쌍둥이를 잃은 아버지의 절규하는 모습이 신문에 도배되었다. 이 땅에도 전쟁 발발의 위기감이 더욱 가중되고 있어 불안하다. 도대체 세상은 어떻게 흘러가는가?
불안한 마음을 억누르며 금년도 제1차 전무출신 훈련을 떠났다. 훈련 중에 ‘당신의 서원은 무엇입니까?’란 물음의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나는 서원 대신 ‘지금 나의 기도에 제일 많이 들어가는 내용이 뭐지?’ 하고 챙겨보았다. 바로 ‘세계평화’였다. 왜? 해답은 명쾌했다. ‘우리 교법으로 할 수 있으니까.’
우리 교법으로 이 어지러운 시국을 바루고 세계평화를 이룰 수 있는 길이 사은사요와 삼학팔조의 실천에 있다. 이 간단한 법이 정말 이 세상의 평화에 기여하고 모두를 참답게 잘 살게 할 수 있을까? 그러나 현실로 돌아와 보면 지금 각 교당의 교도님들과 교무님들이 대종사님의 말씀을 따라서 ‘진리적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으로 모두 평화를 실천하고 있을까?’ 하는 것에는 의문을 가진다.
대종사님께서 후천개벽시대의 주세불로 이 세상에 오시어 회상을 펼친지 이제 100년이 넘었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대종사님의 법을 온전하고 확고하게 우리들이 활용하고 있는가 하는 것에는 의문이 든다. 또 한편에서는 교법을 ‘개벽된 이 시대’에 맞게 새롭게 바꿔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우리는 정말 최선을 다해보았을까?
중학교 윤리교사인 신입교도의 정기일기 내용이다.
공자는 인간 사이의 관계와 도리를 밝히고, 석가는 생명의 존엄과 살생을 금하였고, 예수는 하느님에게 의지하여 구원을 받으라는 것이고, 노자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와 무위자연의 도를 말하였다.
그런데 대종사님은 돌멩이 하나, 흐르는 강물, 나무 한 그루 이 모든 것이 부처이니 경건하게 대하라고 하셨다. 이 얼마나 크고 도량이 넓은가. 감탄스러운 마음이 절로 든다. 이래서 원불교가 열린 종교, 진리도 종교도 세계도 하나라는 것 아니겠는가. 그렇기에 ‘원불교는 평화입니다’라는 말이 성립하는 것이리라. 그저 인간만이 아니라, 살아있는 생명만이 아니라, 우주 만유 허공 법계의 모든 것이 부처이고 그 은혜가 작용한다는 뜻이니 참으로 원대하고 광대무량하다.
이런 마음으로 일상을 살고 사람을 대하고 보이는 모든 것을 정성껏 대하고 존중하고 상생을 찾아가는 길이 원불교의 정신이라 생각하니 이 법을 알게 된 게 참으로 고맙고 기쁘기 한량없다. 이런 깨달음을 어떻게 학생들에게, 만나는 사람들에게, 가족에게 전할 수 있을까가 또 다른 질문으로 다가온다.
대각의 달 4월! 우리 모두가 진실로 대종사님의 법대로 살아가고 있는가를 다시 생각해본다. 4월은 원불교 사람들이 다시 마음을 다잡고 새롭게 각오를 뭉쳐야 할 시기다. 
“당신의 서원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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