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무용론 시대의 종교 3

● 좌담 
한국염 목사·한국 기독교교회협의회 부회장
효록 스님·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 초빙 교수
최연엽 수녀·한국 순교복자수녀회
이진원 교무·원불교 오덕훈련원 원장

● 사회 
장지해 월간 원광 부편집장

● 일시 및 장소   
원기 102년 4월 11일 원음방송 TV스튜디오

물질개벽은 우리의 생활을 많은 부분에서 편리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마음 어딘가가 헛헛하기만 한 시대. 혼술, 혼밥, 혼영…. 이러한 말들을 통해 우리는 사회의 외로움과 고독을 자주 접하곤 한다. 그러기에 따뜻하고 부드러운 힘이 더 필요한 요즘. 종교가 그 역할을 해 줄 순 없을까? 4개 종교(개신교, 불교, 원불교, 천주교) 여성 종교인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 편집자 주 -


장지해 교무 : 작년 12월에 발표된 2015 인구주택총조사에서 우리나라 무종교인구가 종교인구 비율을 넘어섰다. 더불어 젊은 층 종교인구 감소도 눈에 띈다. 주변에서 탈종교화 혹은 종교무용론을 실감했던 경험이 있을 것 같다.
한국염 목사 : 저는 종교계뿐만 아니라 일반 여성운동단체 활동도 하고 있다. 여성운동을 하는 활동가나 운동가들에게서 탈종교 현상이 많이 나타난다. 종교가 ‘사람의 해방’이라는 본질을 실현하지 않고 가부장적인 제도를 더욱 고착화해 나가는 게 큰 이유다. 또 물량주의적이고 세속적이고 개인주의적이고 기복적이다 보니, ‘종교가 우리 세상과 똑같은데 굳이 신앙을 갖고, 교회를 다닐 필요가 있나?’라는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다.
이진원 교무 : 전임지 지역사회에서 요가를 7~8년 정도 가르쳤는데, 교무를 좋아하고 잘 따르면서도 종교는 안 가지려고 하더라. 왜 그런지 물어보니까 제약이 많고 구속을 당하는 느낌이 들어서라고 한다. 의무감에서 자유롭고 싶은데 종교를 가지면 일요일에 종교활동을 해야 하고, 그러다 보면 주말에 자유롭게 놀러가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다. 정신적 세계보다 밖으로 나타나는 물질세계에 더 많이 익숙해지는 것 같다.
최연엽 수녀 : 실질적으로 성당에서 사도직을 할 때 보면 젊은 청년층과 초·중·고등학생 신자 수가 많이 줄었다. 그리고 성당 밖의 다른 곳에서 우리(수도자)를 만나도 신자라는 것을 잘 밝히지 않는다. 학부와 대학원 과정에서 여러 학생들을 만났는데, 1년 정도가 지난 후에야 ‘사실은 성당 다녔고, 세례명이 뭐고….’ 하는 이야기를 한다. 종교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밝히기 꺼려하는 분위기를 느꼈다. 또, 자유롭고 싶은데 교회에 오면 따르고 지켜야 할 규칙이 많다는 점, 이건 어느 종교든 피해갈 수 없는 부분인 것 같다.
효록 스님 : 중학교 시절 포교당을 다닐 때 소도시였음에도 불구하고 인원이 많았다. 그런데 현재 서울 시내 유명 사찰에서 중·고등학교 법회를 보고 있는 도반 스님 이야기를 들어보면 출석 학생이 2~3명이라고 한다. 또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심리상담 관련 과목을 가르치고 있는데, 제 모습이 스님인데도 불구하고 학생들은 종교나 불교에 관심이 없다. 관심을 가져야 할 데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종교인구가 감소하고 있다는 것은 여러 방면에서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장지해 : 한 조사결과에 의하면 종교를 믿지 않는 가장 큰 이유 두 가지가 ‘관심이 없다’와 ‘종교에 대한 불신’이었다. 종교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원인은 뭘까?
이진원 : 과거에는 종교가 교육이나 의료 등 생활수준에서 많은 역할을 해오면서 세상을 선도했다. 그런데 지금은 세상이 더 앞서가고 있다. 교당이나 절에 가는 것보다 더 재미있게 즐길 거리가 많고, 돈으로 해결되는 일들도 많다보니 굳이 종교를 가지지 않아도 삶의 질이 나쁘지 않다. 종교들이 정신적 만족감을 못 주고 있는 것이다.
효록 : 우리가 살아가는 삶 속에는 고통과 스트레스가 엄청 많다. 이것에 대해 무언가 해결되고 구원받기를 원하는 게 많은 사람들의 바람이다. 그래서 기대를 가지고 종교를 바라보는데 그 기대를 충족시켜주기는커녕, 오히려 실망감을 많이 느끼는 것 같다.
최연엽 : 저는 구조적인 문제를 더 들여다보게 된다. 조직에서는 고위 성직자의 역할이 중요한데, 그런 어른이 많지 않은 것도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다. 우리 천주교 사제·수도자들은 일반적으로 3년 임기로 인사이동을 하게 된다. 사람이 바뀔 때마다 신자들이 속한 단체의 활동 방향이나 내용이 달라지는 경우가 빈번하기 때문에 어떤 사업(프로그램)의 지속성과 그 맥을 유지하면서 발전을 도모하지 못하는 한계점이 있다. 다른 한편으로 신자들이 수도자들에 대한 기대치가 매우 높은 것 같다. 수도자들의 ‘언행’ 때문에 상처를 입거나 크게 실망하는 모습을 보면서 수도자들이 ‘성인’ 경지의 덕을 지닌 존재가 되기를 기대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한국염 : 교회가 교회답지 못하고 사찰이 사찰답지 못한 게 가장 큰 이유다. 자기 본연의 가치를 손상하면서 세상과 동화되려고 하면 사람들은 실망을 한다. 올해가 마틴 루터 종교개혁 500주년이 되는 해인데, 슬로건이 ‘교회로 하여금 교회답게 하라.’이다. 이걸 모든 종단으로 확장시켜보면 ‘종단이 종단다워야 사람들이 다시 종교를 찾는 시대가 될 것’이다.

장지해 : 탈종교, 종교무용론의 원인으로 과학과 물질의 발전을 꼽기도 하는데, 이러한 시대에 종교와 종교인들이 어떻게 맞춰가야 할지 고민이다.
효록 : 어쨌거나 다른 사람의 고통과 괴로움을 해결해주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이 갖고 있는 괴로움이나 고통을 해결한 경험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다른 사람의 아픔을 어떻게 바라보고 치유해줄 것인가 하는 답이 나온다. 자신이 경험한 것을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누는 것, 그게 물질과 과학의 무한 발전시대에 종교인들이 할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이진원 : 기계가 웬만한 인력을 대치할 수 있다는 시대에 그것만 의지하다보면 인간성을 상실하게 된다. 기계로 인해 편리함을 얻지만, 사람은 결국 고독이나 외로움을 견디지 못한다. 그 고독을 이겨보려고 다른 물질을 찾아도 결국에는 또 한계를 느낀다. 종교는 말로만 전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각자의 생활 속에서 실천을 통해 변화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외로움, 고독, 물질만능주의에 빠졌던 편리함을 뒤로하고 느리게 가는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하면서, 그로 인해 삶의 질이 높아지고 행복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한국염 : 21세기에 들어오면서 과학화 시대, 지구화 시대와 함께 이야기하는 게 바로 ‘영성의 시대’다. 과학화되지만 영적으로는 더욱 고갈될 것이고, 그러기 때문에 영성의 길로 인도할 수 있는 지도자가 필요할 것이다. 여기에 종교의 가능성이 있다. 종교인들이 정신만 제대로 차린다면 오히려 위기가 기회가 될 수 있다. 어떻게 하면 종교 지도자들이 종교 본연의 영성을 회복하고, 사람들에게 영성을 회복할 수 있는 지도력을 발휘하게 할 것인가가 종교의 과제다.
효록 : 영성에 대표되는 게 종교성이다. 그런데 영성은 추구하고 싶어 하면서도 종교성은 추구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경향이 많다. 종교인의 숫자는 점점 줄어드는 데 반해 영성을 계발하고 깨우기 위한 소규모 그룹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우리 종교인들이 그들의 요구에 발을 잘 맞추면 영성과 종교성을 함께 성장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과학화되고 세분화된 자본주의 시대에는 오히려 종교가 꽃을 더 피울 수 있을 것이다.
최연엽 : 산업화가 시작된 이후로 200~300년 가량 지나치게 인간중심주의로 흘러왔던 것에 대한 성찰이 있어야 한다. 요즘 교회 안팎으로 생태영성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 우주와 지구가 연결된 생명공동체이므로 지구 안에 있는 모든 피조물, 모든 생명체들이 다 소중하다는 것이다.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가 공존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을 만들어가야 한다. 과학은 그걸 보장해주지 못한다.

장지해 : 많은 사람들이 세상이 아무리 변화해도 종교가 가진 고유의 기능은 축소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수반되어야 할 텐데.
효록 : 불교의 최고 목적은 고통으로부터의 해탈이다. 자기 본인의 문제든 다른 사람의 문제든 ‘고통’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괴로움과 고통, 특히 현대인이 갖고 있는 다양한 스트레스를 어떻게 충분히 이해하고 해결할 수 있는가에 대해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이진원 : 원불교는 모든 사람들이 광대무량한 낙원에서 살게 하기 위한 목표를 가지고 있다. 뭔가 내 생활에 유익한 게 있어야 종교를 찾아올 것이다. 저는 그걸 명상이나 요가로 접근했다. 외의로 많은 사람들이 육신의 고통을 겪고 있다. 요가를 통해 흩어진 몸의 균형을 잡아가다보면 마음이 안정되기 마련이다. 일단 내려놓는 공부를 통해 다시 채워가는 역할을 돕는 종교가 되어야 한다.
한국염 : 종교가 기본적으로 해야 될 일이, 억압된 사람들을 해방시키고 차별받는 사람들이 없는 평등한 세상을 만드는 것 아닌가. 부처님이자 하느님인 세상 사람들을 모두 존엄하게 살 수 있도록 하는 사회가 되도록  만드는 역할을 제대로 못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종교를 떠나는 것 같다. 제 아무리 과학화가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그 역할은 계속 필요한데 말이다.
최연엽 : 복음을 정의와 평화의 시선으로 보면, 예수님이 선포한 ‘하느님 나라’란 ‘현세에 하느님의 다스림이 실현되는 나라’인 것 같다. 그런데 내세의 하느님 나라, 즉 사후에 천당하는 곳으로의 하느님 나라에 집중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예수님이 선포했던 복음의 핵심이 ‘약자들의 자유와 해방을 위해 일하라.’는 것임을 다시 기억하면서 사회적 약자들의 손을 잡고 연대하는 일들을 해야 한다.

장지해 : 수녀님이 말씀하신 정의가 실현되는 하느님 나라나, 교무님이 말씀하신 광대무량한 낙원세계가 같은 모습이라는 생각이 든다.
효록 : 저는 스님이지만 평소에는 부처님을 잘 찾지 않다가(하하) 개인적으로 너무 힘든 일이 생기거나 괴로우면 ‘아, 부처님!’ 하고 외친다. 그러면 안도감이 생기고 거기에서 무언가 해답을 구하게 된다. 그런 면에서 종교가 심리적으로 안정을 주는 역할은 매우 크다.
한국염 : 신학자 본회퍼가 ‘하나님 없이 하나님 앞에 선다.’는 말을 했다. 자신의 자리에서 좋은 세상을 만드는 일에 노력한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이름을, 신의 이름을 빌리지 않아도 신 앞에 있다는 이야기다. 우리 역시 종교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내가 교회를 다닌다.’ 혹은 ‘부처님께 귀의한다.’는 말을 하지 않더라도,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어간다면 신에게 귀의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게 오늘날의 개벽세상을 만드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이진원 : 나쁜 일은 하지 말라고 해도 성행한다. 그런데 영성을 함양하고 즐거움의 세계, 낙원의 세계로 인도하고자 하는 좋은 법을 찾지 않는 사람이 있을 리가 있을까? 당장은 찾는 사람이 적다고 할지라도, 늘 솟고 있는 샘물처럼 우리가 각자의 일터에서 묵묵히 종교인의 역할을 다하면 세상을 밝히는 등불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최연엽 : 장례를 치를 때 흔히 ‘이제 하늘나라에 가서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한다. 그 자체가 상당히 종교적인 표현이다. ‘저 세상으로 갔다.’고 하지, ‘없어졌다, 사라졌다.’는 표현을 하지 않는다. 그걸 봐도 인간이 종교를 떠나서는 살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해 있어 많은 사람들이 마치 종교가 없어도 살 수 있는 세상인 것처럼 생각하고 살아가지만 하지만 결국에는 종교를 찾게 될 것이다.

장지해 : 최근 상상도 못할 국가적 위기 상태가 지속되면서 시국선언이나 거리 행진 등 시민들과 함께하는 종교의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사실 종교가 가진 중요한 기능 중에 하나가 사회의 구성원들과 함께하는 것일 텐데, 종교인들의 사회참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최연엽 : 개인적으로는 다양한 차원에서 사회가 함께 목소리를 내달라고 요청하는 데 많이 결합을 하는 편이다. 그런데 종교인들의 사회참여에 대해 교회 안팎에서 왜곡되게 받아들이는 게 있는 것 같다. ‘수도자가 왜 사회참여를 하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데, 이건 복음을 제대로 못 알아들은 거라고 생각한다. 예수님은 그 시대에 살 때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대변하는 역할을 했고, 그 사람들과 함께 먹고 마시며 생활을 했다. 그런 예수님의 실제 삶의 영역은 배제된 채 영적인 측면으로만 너무 중심이 쏠려있는 느낌이다. 누구든 사회적 약자가 될 수 있다. 때문에 ‘나는 약자가 아니지만 약자 편에서 해준다.’는 식으로 접근하지 않고 ‘나도 사회적 약자 중 한 사람이다. 만약 세월호에 내가 타고 있었다면 나도 그렇게 죽어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그들과 함께 연대한다.’는 마음으로 참여한다. ‘우리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나가기 위한 사회참여는 필요하다.
효록 : 개인적으로 ‘아, 정말 사회참여다!’라고 한 건 세월호사건 이후다. 팽목항에서 2박 3일동안 자원봉사를 하면서 그 사람들의 고통을 고스란히 경험하게 되었고, 이후 노동운동에까지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렇게 가장 낮은 자리에서 고통받는 사람과 함께하고 싶다는 염원이 싹텄는데, 그 인연으로 성소수자인 불자들과 한 달에 한 번씩 정기적인 모임을 갖고 법회를 보고 있다. 사실 그 사람들과 만나기 전에는 내 가까이에 성소수자가 그렇게 많다는 걸 전혀 몰랐다. 그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면서 법회를 보다보니 내가 기존에 속해있던 한국, 불교, 여성이라는 세계를 넘어선 전혀 다른 세상을 만나게 됐다. 그런 면에서 종교인들이 사회참여를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고 보는 편이다.
이진원 : 기본적으로 인간은 평등하기 때문에 본래 강자와 약자가 따로 없는 것이지만, 사회적인 차별에 의해서 나타나는 약자는 존재할 수밖에 없다. 종교인은 이러한 부분에 무관심할 수 없다. 영성의 힘을 갖춘 종교인들이 사회적인 보장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함께해야 한다. 현재 세월호 미수습 아홉 영가들을 위해 특별천도재를 지내고, 매일 기도를 하면서 호명을 하고 있다. 적극적인 행동파도 있는 반면, 행동을 못하는 사람들은 마음으로 함께할 수도 있다. 그렇게 여러 방법으로 세상을 평등하게 만들어가고자 하는 일들을 하면 좋겠다.
한국염 : 신학교를 들어가서 가장 먼저 배운 게 해방신학이다. ‘가난한 자들과 함께하는 교회’.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세상의 약자나 눌린 자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고, 당시에는 이 세상에서 가장 눌리고 차별 받는 자가 여성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여성운동에 뛰어들게 됐다. 그런데 여성운동을 하는 사람들 중에 여성의 해방 문제에만 관심을 가지고 다른 불평등 문제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 사람이 있다. 내가 차별받고 억눌려본 경험, 그리고 거기에서 해방된 경험을 가지고 나와 비슷한 입장에 있는 사람들의 해방을 도와주고 지원해야 진정한 페미니스트인데 말이다. 여성의 해방만 주장하고 다른 사람들의 해방에는 관심없는 이들을 사이비 페미니스트라고 지적하는데, 그런 이야기를 하면 나를 이상하게 보는 여성운동가들도 있다.(하하) 그리고 이렇게 행동으로 나서서 할 수 있는 영역도 있지만, 자기가 서 있는 터전에서 하는 기도도 매우 중요하다. 거리 참여와 기도가 합쳐져서 사회를 바꿔내고 불의를 정의롭게 만들어내는 힘이 된다.

장지해 : 요즘 사회가 너무 각박하고 혼술, 혼밥, 혼영, 혼행…. 모든 것들이 이렇게 표현될 정도로 개인화되다 보니 실제로 사회에서 따뜻함을 많이 요구하는 것 같다. 그러면서 여성종교인들의 역할도 더 강조되고 있는데.
최연엽 : 어떤 논문을 준비하면서 ‘보살핌의 형상학’이라는 개념을 보게 됐는데, 그게 참 와닿았다. 우리 마음 안에 보살핌이라는 것이 사회적 본성으로 다 내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자연재해가 일어났을 때 너도 나도 돕겠다고 나서는 것이나, 해외 재해재난 사고 현장을 위해 모금을 하고 물품을 보내고, 세월호 사건이 터졌을 때도 시너지가 모이는 이런 차원들이 다 보살핌이 일어나는 장면인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보살핌이라는 것을 여성의 역할에 한정 짓기보다는, 인간이 해야 하는 역할 전반에 이어서 좀 더 따뜻한 세상을 바라보는 것들이 필요하다는 측면으로 접근해야 할 것 같다.
한국염 : 성경에 ‘궁휼히 여기다.’라는 말이 있다.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자비’와 같은 말인데, 이 말의 어원은 ‘자궁, 레헴’이다. 자궁이 떨리는 그런 마음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한다는 뜻이다. 자궁은 여자들이 가진 것이라 아무래도 여자들이 사랑과 보살핌을 더 잘할 수 있는 건 맞는 것 같다. 그런데 모성을 이데올로기적으로 접근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사회적 모성으로 확장된다면 여성의 모성성이 사회를 구원할 수 있다. 자궁이 떨릴 정도로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어떻게 종교 가치로써 사회에 쓰일 수 있을 것인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이진원 : 저는 우주가 여성으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모든 인간의 생명체는 여성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에 남성도 그 안에 포함이 되어있고, 그래서 여성이 훨씬 더 품이 넓고 전체를 안을 수 있는 깊이가 있는 것 같다. 여성과 남성은 각각의 특성이 있지만, 여성들은 확실히 인내력이 있고 포용력이 더 강하다. 그런 여성만의 장점을 살려서 종교인들 역시 잘 활용한다면 차별받거나 소외 받는 성차별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다.’는 자부심으로 더 당당하고 자신감 있게 활동할 수 있을 것 같다.
효록 : 여성이든 남성이든 여성성의 회복은 중요하다. 성별에 관계없이 각자가 가진 여성성이 꽃필 때 그 품으로 모두를 성장시키고 사랑하고 돌볼 수 있다. 여성과 같은 부드러움, 그 연약함에서 진정한 힘이 나온다.

장지해 : 이웃 종교에게 부러운 점이 있다면?
효록 : 너무 많다. 기독교는 심플한 교리가 부럽다. 하느님을 오롯이 믿음으로 인해 얻게 되는 혜택과 축복이 참 큰 것 같다. 한국에서 사회운동에 앞장서는 부분에 대해서도 부럽다. 천주교의 경우에는 불교에서는 상상도 못할 영역, 예를 들면 HIV 감염인들을 위한 쉼터를 한다든지, 밀양 송전탑에 가서 적극적으로 참여를 한다든지 하는 모습이 부럽다. 원불교는 전문직을 가지면서 그 전문직을 그대로 사회에 활용하면서도 성직자나 종교인으로서 역할을 하는 게 부럽다.
최연엽 : 사실 가톨릭은 제도 교회라 그 제도 안에서 제약들이 많이 존재한다. 그런 면에서 개신교는 개별 교회로 움직이기 때문에 자율성과 역동성이 있는 것이 부럽다. 불교의 가장 부러운 점이라면 담이 없고 누구에게나 개방되어 있다는 것이다. 조계사에는 세월호 희생자들을 기억하면서 절 기도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더라. 그런 것들이 감동을 준다. 또 원불교에서 말하는 ‘개벽’이 ‘현세적 종교로서 낙원을 실현한다.’는 부분에서, 우리가 말하는 ‘정의평화가 실현되는 것’과 같은 의미를 가지는 것 같다. 역사가 짧으니 그만큼 젊은 교회(종교)라는 점도 부럽다.
이진원 : 부산에서 삼소회 활동을 잠깐 했는데, 그때 같은 여성 종교인으로서 서로 활동하는 모습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 개신교는 참 적극적이어서 좋다. 봉사조직도 잘 되어 있어서 활동을 정말 열심히 하더라. 그리고 원불교는 교화 현장에 있으면 교화에 대한 스트레스가 많이 있는데 불교는 그런 면에서 상당부분 자유로운 것 같다. 천주교는 수도회별로 각각 여러 활동을 전문적으로 하는 게 종단의 힘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염 : 사실 한국에서 각 종교 간에 배타적인 성격이 있지만. 서로 다른 종교여성들이 경계를 허물고 연합할 때 생기는 시너지효과가 굉장하다. 호주제폐지운동, 통일운동, 평화운동에서 소중하고 좋은 경험을 실제로 많이 했다. 이웃종교 여성들과 교류하면서 ‘앞으로의 종교는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가.’에 대해, 종교들이 다양성 안에서 일치해서 어떻게 역량을 발휘할 수 있을지 많은 자극을 받는다. 여성종교인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역할을 하면서도 때때로는 모였으면 좋겠다.
이진원 : 목사님도 계시니까 삼소회가 아니라 사소회 활동을 하면 참 좋겠다.(하하)

장지해 : 종교에 대한 무관심이 커지고 있지만, 많은 분들과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오히려 종교의 역할에 대한 큰 희망을 보게 된다. 종교와 종교인들이 세상의 삶과 고통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임으로써 더 많은 사람들이 종교를 가까이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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