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노
금속상감 전통기능전승자

만 번의 두드림, 인내의 예술

조그마한 향함과 담배함, 염주함, 자물쇠, 크고 작은 함….
금속으로 만들어졌을 것이 분명한 작품들은 놀랍도록 정교하다. 세심하게 장식된 무늬를 무심결에 만져보는데, 금속에 새겨진 것이 아니다. “이걸 은입사 기법이라 해요. 가는 은실을 박아 무늬를 만드는 것이죠.” 넌지시 설명을 건네는 이경노 금속상감 전통기능전승자(14-01호)다.
“고려시대부터 내려온 공예기술이에요. 화려하고 세련된 아름다움으로 장식품 등에 사용됐죠.” 이 기능전승자가 직접 시범을 보이는데, 예리한 정으로 철판의 표면을 촘촘하게 쪼아 결을 낸다. 그 뒤 머리카락 굵기의 얇은 은실을 결 사이에 두드려 끼워 넣으며 무늬를 만드는 것. 이때 정으로 촘촘하게 작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래야 은실이 제대로 박히고 세밀하게 표현이 가능하기 때문. 작은 작품 제작에만도 6개월, 만 번 이상의 두드림이 필요한 인내의 기술인 것이다.
“젊었을 때는 공방에 앉아 온종일 가느다란 실만 보며 작업하는 게 힘들었어요. 다른 일을 찾아보겠다고 뛰쳐나가 막노동도 해보고 제철회사에도 다녔지요.” 하지만 언제나 제자리로 돌아오고 말았다는 그가 스승 밑에서 8년, 그리고 다시 돌아와 10년을 일하며 세운 목표는 ‘나만의 노하우로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작품을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이 일을 해야겠다고 다짐하고 나니 이 분야의 최고가 되고 싶었어요. 선생님이 외출하면 몰래 연습하고, 쉬는 날이면 전시장이나 박물관을 다녔지요.” 전시된 작품의 뒷면이 궁금해 목을 빼고 보다가 장식장 유리에 부딪치기도 여러 번. 늘 집에 돌아와서도 정을 놓지 못했다. 그렇게 전통 문양과 기법을 연마하던 그가 세상에 드러난 것은 1996년도 전승공예대전에서였다. 대상인 국무총리상을 받은 것이다. 개인 작업공간이 없어 집 한쪽에 마련된 탁자에서 작업한 작품이었다.
“뜻밖에도 큰 상을 받은 거죠. 그때 만들었던 작품은 저에게 남다른 의미가 있어요.” 이후 각종 대회에서 상을 받으며 기능을 인정받은 그. 그의 작품은 기계로 무늬를 넣은 것이 아니냐는 말이 나돌 정도로 세밀하고 은실이 촘촘했다. 나만의 것을 만들겠다던 다짐을 이뤄낸 것이다.
“‘누구도 나만큼 정교하게 무늬를 넣을 수 없겠지? 귀신도 못 하겠지?’란 마음으로 작품을 만들어요. 그만큼 기술에 자신이 있지요.” 은실을 뽑는 것부터 기물제작까지 작품 제작의 전 과정을 혼자 해내고 있는 이 기능전승자. 그는 지금까지 수많은 작품을 만들었지만, 아직도 작품을 준비할 때면 설레고 두근거린다고 말한다.
“노력한 만큼 기술이 늘어나는 재미가 있어요. 그래서 힘들지만 지금까지 재미나게 할 수 있었던 거죠.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요.” 하지만 단 한 가지, 근심이 있다면 사람들이 이 기술을 배워보고 싶어 하면서도 막상 일을 시작하면 오래 버텨내지 못한다는 점이다. 오랜 제작 시간과 더불어 판매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 상을 받은 이후에도 판매가 어려워 배낭을 메고 영업을 다녔던 그이기에, 그 마음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다행히 아들이 전수를 받고 있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이 공예를 알아주어서 대중적으로 보급되면 좋겠어요. 그렇게 되기 위해 저도 꾸준히 노력해야겠지요.” 앞으로 이 기술을 배울 후진들을 위해 체계적인 공식을 확립해나가는 것이 그의 꿈. 40년 전의 다짐을 묵묵히 완성해 낸 것처럼, 여전히 새로운 꿈을 위해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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