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교전

이야기 하나.
교도 한 사람이 지하철을 타고 가며 교전을 봉독했다. 그러다 잠깐 딴 생각을 하며 가방을 뒤지느라, 교전을 둔 채 내리고 말았다. 나중에서야 교전을 두고 내린 것을 알았으나, 지하철은 이미 떠난 뒤라 마음 챙기지 못한 무념을 탓할 뿐이었다.
빈자리에 앉으려던 한 청년이 교전을 보고 호기심에 펼쳐보았다. 알 듯 모를 듯 묘한 전율이 온몸을 타고 흐르며, 힘들고 어려웠던 지난날이 스쳐 지났다.
‘아! 이게 도대체 뭐지? 그렇게 고민하고 힘들어하던 내 모든 문제의 답이 이 안에 다 있네.’ 내려야 할 역을 지나 종점에 다다랐고 다시 되돌아와야 해서 두어 시간이 훌쩍 지났지만, 그 시간은 찰나의 순간일 뿐이었다. 밤을 꼬박 새워 교전을 읽는 동안 왠지 모를 눈물이 주르륵 흐르고 흘렀다. 겨우 눈물을 닦고 가까이 있는 교당을 찾았다. 환한 일원상을 바라보는 순간 온 세상의 빛이 몸 안으로 스며드는 기분이 들었다. 드디어 만난 원불교가 영혼의 동반자가 되는 순간이었다.
지하철에 교전을 두고 내린 그 교도는 누구였을까? 나를 원불교로 이끌고자 하신 소태산의 은혜가 아닐는지.
이야기 둘.
방앗간은 곡식을 찧거나 빻기 위해 커다란 기계가 쉬지 않고 돌아가는 곳이다. 감곡교당은 이 방앗간 교당에서 출발하였다. 법방아를 찧는다는 마음으로 교화에 정성을 다했으나 교당으로 사용하기엔 여러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이때 종로교당 김명환 주무가 부친의 묘소로 쓰기 위해 마련한 땅의 일부를 교당부지로 희사하여 교당 건축의 마음을 낼 수 있었다.
간사는 야산에서 땔감을 구하고, 교무는 이웃교당에서 부식을 얻어다 먹으며 차츰 교당 살림을 늘려갔다. 그리고 쌀계와 유지답, 고추농사 수입 등으로 교당 신축의 열의를 이어나갔다. 이런 모습에 감화를 받은 이웃들이 교도가 되었다. 그러는 중 교무는 당시 면장인 전계봉 씨를 입교시키기 위해 공을 들이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다른 종교를 신앙하고 있었으나, 원불교를 좋아하는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교당을 건축하는 중에도 그에게 여러 가지 자문을 구하고 부탁을 하였다.
“교당 우물 자리를 좀 봐 주세요. 어디가 좋을지 면장님이 봐 주시면 의미도 있고 참 좋을 것 같습니다.”
전 면장은 흔쾌히 교무의 청에 응하며 우물 자리 뿐 아니라, 하루에도 몇 차례 교당을 드나들며 건축 과정 전반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러다 교무를 비롯한 교당 식구들의 성실함에 감동을 받아 입교를 하였고, 평생 알뜰한 교도가 되었으니 우물 자리 한 번 제대로 본 게 아닐까.
오늘도 난 은생수(恩生水) 법생수(法生水)를 샘솟게 할 우물 자리를 찾고, 함께해줄 인연을 기다리며 기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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