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연구회 소장 <옥추경> 이본의 계보
글. 이정재

앞선 호에서 제시했듯 옥추경 이본은 총 6개다. 필자가 알고 있는 <옥추경> 이본은 사실 이십여 종에 이르는데 이 중 여섯 종이 원광대 도서관에 소장된 점은 다른 도서관이나 대학에 비해 많은 수에 해당된다. 여기에는 불법연구회의 것과 원광대도서관 고서자료의 것들이 섞여있다. 보다 정확한 고증을 위해서는 이 모두를 같은 수위에 놓고 살펴야 한다.

1. 구천응원뢰성보화천존옥추보경(九天應元雷聲普化化天尊玉樞寶經 / 필자미상, 필사본)
2. 구천응원뢰성보화천존옥추보경(九天應元雷聲普化化天尊玉樞寶經 / 필자미상, 필사본, 표제; 옥경해-초(玉經解-抄))
3. 옥추보경(玉樞寶經 / 박해창 사(寫), 필사본, 개성: 박해창(朴海昌), 1934)
4. 옥추보경(玉樞寶經 / 필자미상, 필사본, 합철(合綴): 음부경해(陰符經解), 표제; 보경해-합부(寶經解-合部))
5. 옥추보경주해(玉樞寶經註解 / 필자미상, 필사본, 표제; 옥추보경(玉樞寶經))
6. 옥추보경(玉樞寶經, 옥추보경문(玉樞寶經文))
7. 상밀주해 옥추보경(서지사항 미상)



모두 같은 옥추경이지만 서로 다른 이본으로,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다만
전 6권이 필사본이란 특징이 있다. <옥추경>의 원명은 <구천응원뢰성보화천존옥추
보경>이다. 훗날 옥추경으로 개명을 하는데 원광대학교에는 이 두 이본이 공존하는 특징도 있다.
1번은 서지사항에서 보듯이 작자미상의 필사본으로 되어있다. 순 한문으로 적었고, 필체가 매우 유연하여 필사된 것처럼 보이나 자세히 보면 판본으로 유추된다. 추후 확인이 요구된다. 이 책의 특징은 장절 구분이 없다는 것이다. 책의 서두에는 ‘계청송’(5언 10구)을 실었고 끝에는 ‘지심귀명례’와 ‘찬’을 넣어 구성하였다. 다른 옥추경에 주로 보이는 ‘부적(符籍)’이나 ‘신상(神相)’ 혹은 ‘변상도(變相圖)’ 등이 일체 없다. 그리고 어떤 주해도 없이 간결한 내용만을 담은 편집이다.
2번은 20행 20자 총 32장에 해당된다. 양이 늘어난 이유는 한글로 번역해
놓았기 때문이다. 즉 한문 원문과 한글 번역본을 병치하며 적고 있다. 표제를 <옥
경해-초(玉經解-抄)>로 적었으나 책 내면에는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옥추보경>이
란 원명을 사용하고 있다. 특이점은 표제 옥경해 하단에 초(抄)라 적어 어디서 옮겨 적었는지를 시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자료 4를 보면 바로 확인이 된다. 4는 <옥추경>에 <음부경>을 합하여 만든 것으로 이 둘을 모두 번역한 것이다. 아마도 4에서 <옥추경> 부분만 따로 떼어 적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역시 일체의 부전이나 그
림이 없는 특징을  가진다.
3번은 위의 1과 2와 전혀 다른 체제를 한 책이다. 필사자의 인장이 확인된 점이 특이하다. 서지에 따르면 1934년 박해창이 옮겨 적었다. 책의 상태도 비교적 깨끗하고, 정성 들여 쓴 것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필체가 흐트러지지 않았다. 아마 대량 유포를 겨냥한 필사본이었던 것 같다. 국한문 혼용을 하였으나 일정한 규칙을 보여주지는 못하여 거의 한문본이라 봐도 무방하다. 이 책의 특징은 변상도나 신상의 그림은 없지만 부적을 그려넣어 그 중요성을 강조했다는 것이다. 보현사본을 모본으로 하고 여기에 인경 부분을 더한 완성본의 체제를 갖춘 것으로 여겨진다. 다른 본보다 늦은 1934년에 나온 특이점이 있다.
4번 <옥추보경>은 <음부경해(陰符經解)>와 합철(合綴)되어 있는 특징이 있다. 여기서 해(解)란 번역이 되었다는 의미다. 앞서 언급했듯이 자료 2와 같은 형식이다. 원문을 단락별로 나누어 앞부분에 원문과 번역을 이어서 하는 형식이다. 앞서 2에서 설명했듯이 4의 옥추경 부분은 2의 원본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원문의 장절 구분과 그의 번역이 거의 일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불법연구회 인장을 같이 사용한 것을 봐도 그렇다. <음부경>을 앞에, <옥추경>을 뒷부분에 위치시켰다.
5번의 <옥추보경주해(玉樞寶經註解)>의 표제는 <옥추보경(玉樞寶經)>으로 되어 있는데 굳이 주해를 더해 목록으로 정한 것은 이것이 한글 번역본이었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표지를 넘기면 옥추보경주해(玉樞寶經註解)라 표기되어 있고, 첫 장에 번역을 한 변(辯)을 부기하였다. 그리고 표지에 <옥추보경>이란 큰 글씨의 제목 위에 작게 ‘해(解) 선(鮮)’이라 적어 번역본임을 표시한 흔적이 확인된다. 순수 한글 번역이라 보기는 어려울 수도 있어 국한혼용의 번역이라 하겠다. 이 책은 장절을 구분하여 필사하였다. 그런데 원래의 장절 부분을 모두 먹으로 지워놓았다. 그리고 지운 그 옆에 다시 새로운 장절을 메겼다. 원래의 장절 구분이 사용의 목적과 부합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추정이 가능하다.
6번은 목록에 서지가 없어 정확한 설명을 하기 어렵다. 그리고 이 책은 다른 다섯 권의 책과 다른 체제를 가지고 있을뿐더러 집주가 곁들여진 책이다. 집주의 내용이 방대하여 이를 모두 옮기는데 적지 않은 노력이 들어간 책이라 여겨진다. 장절의 구분이 다른 것과 다르고, 후미 부분은 일부 소실된 흔적이 있고, 장정 표시도 일실된 곳이 있다. 일체의 그림이 없고 부전도 없다. 이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이는 독경 전용이 아니라 순수한 원전의 공부와 연구를 위해 옮겨 적은 것으로 추정된다. 필체의 흐트러짐(특히 집주 부분)은 개인 사용 용도를 목적으로 하였음이 확인되는 요소라 할 것이다.
앞서 살펴본 자료를 다시 정리하면 다음과 같은 이본의 계보가 나온다.
원래 <옥추경>과 <음부경>의 합철본 4가 있었고 여기서 <옥추경>만을 떼내어 만든 <옥경해 초> 2가 나온다. 이것은 한문 원문과 번역이 병기되어 있는 것이라서 보기에 불편할 수 있다. 혹은 어떤 목적 특히 국문 독경용으로 사용하기에는 몹시 불편했을 것이다. 그래서 한문을 빼고 국문만을 따로 모은 것이 자료 5다. 그리고 한문본만을 빼어 묶은 것이 자료 1이 된다. 즉 한글 번역본은 1->4->2->5의 순으로 진화하였다. 한문 원본인 1이 출발점인지는 좀 더 살펴야 하나, 불법연구회 소장본에 한정했을 때는 그렇게 보여진다. 그러나 순수 한글본 <옥추경>으로의 과정은 원문과 번역문 병서의 합철본 4에서 옥추경만의 병서본 2, 그리고 최종적으로 옥추경 한글본 5로 진행하였음은 확실하다.
최종의 옥추경 한글본이 4에서 2를 거치지 않고 직접 순 한글본 5로 전개되었을 수도 있겠으나, 표기법이나 번역에 사용한 단어와 어법 어투의 빈도수를 비교할 때 단계적 전개가 이루어졌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중요한 것은 한글본 확정으로의 단계적 과정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에 있다. 이런 절차는 어떤 목적과 의식 혹은 필요성에 따라 비롯된 것이 아니면 안 된다. 독경과 한문 탈피의 주체의식 혹은 무식자 남·여성을 위한 배려 등으로 추정할 수 있다. 당시는 한글만 익히는 일도 큰일이 아니었던가.
4, 2, 5의 순으로 한글 번역의 진화가 이루어졌고 4가 <음부경>과의 합철본이라는 이유가 이것을 소태산이 읽은 첫 번째 경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들이 불법연구회 소장 유일본들이고 불법연구회에서 한글본으로의 정착과정을 일목요연하게 진행한 점을 볼 때 소태산과 제자들의 손때가 묻은 경들이라는 점은 확실하다 할 수 있겠다. Ι교수·경희대학교 민속학연구소장. hogo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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