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은 바위를 타고 자란다
취재. 노태형 편집인

아이의 뜰에는 바윗돌이 하나 있습니다.
언제부터 그곳에 있었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큰 덩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 집에 머물렀을 겁니다. 하기야, 집안에 난리가 나도 항상 묵묵히 자리만 지키고 있으니 누가 시비를 걸겠습니까. 아이만이 간혹 바위 주위를 어슬렁거릴 뿐입니다.
바위는 아이의 비밀스런 요새입니다. 간혹 똑똑똑 노크를 하죠. 혹은 알 수 없는 주문을 외우기도 하고요. 누가 아나요. 갑자기 바위틈에서 문이 열릴지요. 그 바위가 또 다른 세상으로 통하는 문이라면 환상적이지 않나요? 아니면 엄청난 암호를 품고서 묵묵히 깨어날 날만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놀다 지친 아이가 바위 곁에서 귀를 쫑긋 세우고 말을 겁니다. 엄마에게도 물을 수 없고, 형들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그런 비밀 대화를 하는 거죠. “도대체 세상은 왜 이래?” 문득 바위가 입을 엽니다. “답은 네 속에 있어. 가만히 귀 기울여 보렴.” 어릴 적, 바위가 아이를 키웠습니다. 참 든든하게 말이죠.

형에게도 큰 바위가 있다고 했습니다.
할아버지 집 뒷산에 우뚝 솟은 제법 큰 바위죠. 마치 정령의 힘이 느껴질 것 같은 두려운 바위였습니다. 형은 그것을 엄마바위라고 불렀습니다. 가끔 과일이며 떡이며 과자 등을 몰래 챙겨 그 바위에 올랐죠.
“형, 거긴 왜 가?”
“거기에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대. 엄마바위니까.”
“무섭지 않아?”
“아니. 엄마바위는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다 들어주는 걸.”
아마 형도 할 말이 많았나 봅니다. 바위 곁에서 하루 종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나면 속이 확 풀린다고 하네요. 그래서 사람들은 말없는 바위가 사람보다 낫다고 했나 봅니다.

소나무 씨앗 하나가 바위틈에 몰래 앉았습니다. 씨앗에서 뿌리가 내리고, 꼬마 소나무가 커가면서 바위는 자꾸 몸이 아파옵니다. 비가 내릴 때마다 심장을 파고드는 나무뿌리에 깜짝깜짝 놀라죠. 언젠가는 소나무가 바위를 두 동강 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바위는 소나무를 내 새끼처럼 키워내죠. 솔은 바위를 타고 자랍니다.
사람들은 바위가 외로울 거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슬픔이 많을 거라는 생각은 더욱 못 합니다. 그냥 바위는 바위일 뿐이라고 여기며 살죠. 아마, 바위가 너무 오래 참고 살았나 봅니다. 그래서 바위가 되었겠죠. 그러나 가끔 굴러 떨어져 내리는 걸 보면 바위도 못 참는 순간이 있나 봅니다. 그러니 조심하세요. 바위를.

사람들은 집집마다 바위 하나씩 들여놓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참고 사는 거죠. 바위 같은 지혜로 묵묵하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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