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추경(玉樞經)의 종류와 이본들
글. 이정재

옥추경은 여러 종이 전해진다.
이를 모두 이본(異本)이라 칭한다. 천 년에 걸쳐 중국과 고려·조선에서 필사 혹은 판본 편집 등을 통해 그 내용과 종류가 다양하게 이루어졌다. 소태산이 접한 옥추경이 어떤 종류의 이본인가 하는 문제는 일정의 확인절차가 필요하나 이를 단정하기는 쉽지 않다. 국내에 전하는 옥추경 종류가 너무 다양하기 때문인데, 이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국내에서 발견되는 옥추경 이본의 대강을 살펴야 한다.
옥추경이 반도로 들어온 역사는 남아있는 판본을 대상으로 추적하는 방법이 그 중 하나이고, 필사로 전하는 것도 분리하여 살펴야 한다. 현재까지 남아 전하는 것 중 가장 오래된 목판본은 1570년 무등산 안심사 본이다. 다음에 나온 것은 1612년 진안 반룡사 요약본 <구천옥추경>과 1733년 묘향산 보현사 집주본 <그림옥추경>이다. 이외에 1888년 계룡산본 <옥추보경>이 있다. 1900년대에 들어서는 활자본으로 나오고 차차 한문본에서 한글 번역본으로 이행하는 변화를 보여준다.
이들 판본은 모두 절에서 찍어낸 것이란 점이 특징이고, 일찍이 남도에서 유행하였음을 짐작케 하는 것도 간과할 수 없는 특징 중 하나다. 이는 남도의 독경신앙의 전통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무속적 민간신앙과의 연계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런 공식적인 절차를 거친 판본과 달리 필사본은 더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된다. 원본을 손으로 옮겨 적은 소위 필사본으로 전하는 옥추경은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이나, 아직 종합적 연구가 진행되지는 않고 있다.
판본과 필사본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소위 그림옥추경이라 불리는 보현사본이다. 이것의 특징은 원문만의 경이 아닌 설(設)이나 역(譯) 및 찬(讚)을 덧붙인 ‘옥추경역본’이 주류다. 불법연구회 본은 이와 다른 것으로 민중에 유전되던 필사본을 계승한 것으로 확인된다. 이에 대해서는 이후 더 상세히 다룰 예정이다. 소태산이 읽고 참고했던 자료가 이 중에 있을 것이다.
옥추경은 어느 것이나 모두 같지 않다. 원래 순수 내용만을 적은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이라는 책이 원대에 출현하여 전승되다가, 여러 도교의 실력자 도사들이 주를 붙여 만든 집주본이 많이 퍼졌다. 판본으로는 집주본만이 존재하고, 필사본으로는 집주본과 원본이 같이 공존한다.
중국 내에서도 혼란의 흔적이 보인다. 이 경의 원래 이름은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이나, 명대에 개명되어 청나라 때 집성된 도장경에는 옥추경으로 적혀있다. 현재 대만에 전하는 도장경에 남아있는 경명(經名)도 옥추경으로 되어있으나, 어떤 장경에서는 누락되어있기도 하다. 원대의 경명이 전해지지 않음은 물론, 개명되거나 탈락되는 운명을 맞이하고 있는 셈이다. 다양한 시대를 거쳐 전해진 옥추경은 그것이 어느 대의 것인지 확정하기 어렵다.
원(元)대의 원본에 주(註)를 다양하게 붙이거나 부적(符籍)을 그려 넣거나, 각종 신장(神將)이나 신상도(神像圖) 및 명호(名號)를 그려 넣거나 하여 경의 위엄을 갖추면서 동시에 대중성을 확보하였다. 즉 다양한 옥추경의 모습은 시대별 변화의 추이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런 것이 다시 필사의 과정에 첨삭이 가해져서 복잡하게 전승되어 왔다. 불법연구회는 그 중 일부를 전하고 있다 할 것이다.

불법연구회 소장 옥추경 본은 아래와 같다.
1. 구천응원뢰성보화천존옥추보경(九天應元雷聲普化天尊玉樞寶經)
    / 필자미상 - 필사본
2. 구천응원뢰성보화천존옥추보경(九天應元雷聲普化天尊玉樞寶經)
    / 필자미상 - 필사본, 표제; 옥추해(玉樞解)
3. 옥추보경(玉樞寶經) / 박해창 사(寫) - 필사본, 개성 : 박해창(朴海昌), 1934
4. 옥추보경(玉樞寶經) / 필자미상 - 필사본, 표제; 보경해(寶經解)
5. 옥추보경주해(玉樞寶經註解) / 필자미상 - 필사본, 표제; 옥추보경(玉樞寶經)
6. 옥추보경(玉樞寶經), 옥추보경문(玉樞寶經文)

원광대학교 도서관에서 구할 수 있었던 자료는 총 6권이었나, 원광대학교 중앙도서관의 <고서목록>1) 에 없었던 것이 하나 포함되어있다.2) 앞 5권이 목록에 포함된 것이고 목록별 서지사항을 옮겨놓은 것이다.
모두 같은 옥추경이지만 서로 다른 이본으로,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다만 전 6권이 필사본이란 특징이 있다. 이미 언급했듯이 옥추경의 원명은 ‘구천응원뢰성보화천존옥추보경’이다. 원광대학교에는 훗날 개명된 옥추경본을 포함한 두 이본이 모두 공존하는 특징을 가진다.
상기 자료 중 불법연구회 인장의 여부로 확인할 수 있는 <불법연구회> 소장본은 1, 3, 4, 5번의 자료로, 나머지는 원광대 중앙도서관 인장이 찍혀있는 것들이다. 
인장의 유무는 중요하다. 소태산이 참고한 책인가 하는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불법연구회가 소장하고 있던 옥추경은 일단 소태산이 직접 보고 참고했던 책들이라 할 수 있는데, 여기서 먼저 지적할 수 있는 사실은 경이 하나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 중 어느 것을 참고했는지 아니면 모두를 보았는지 등은 좀더 살펴야 할 사안이다.
옥추경의 이본은 아주 다양하고 그 편집의 종류도 많다. 소태산이 참고한 책이 어떤 종류의 것인지 확정하기 어려우나 일단 시론적 접근을 하였다. 소태산이 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것은 불법연구회 인장이 찍혀있는 총 네 종의 옥추경(1, 3, 4, 5)이 해당된다. 이 중에는 순 한문본, 순 한글 번역본, 원문과 번역 합본 등 다양하다. 소태산이 참고한 책은 이 중 어느 것이거나 모두일 텐데, 제자들과 함께 공부를 하거나 활용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하는 추정이 가능한 대목이다. 그렇다면 옥추경은 단순히 대각 후 소태산이 다른 경들과 함께 본 참고서가 아닌 활용서였던 셈인데, 그건 여전히 미완의 연구로 남아있다.
참고로 소태산 대각 후 같이 봤다는 도가계 <음부경>의 경우는 이 <옥추경>의 절차와 전혀 다른 접근이 이루어졌다. 음부경의 경우 이본은 거의 없고, 옥추경같은 독본의 형태가 아닌 합본 형태로 존재하며, 또 번역의 흔적도 보이지 않는 점 등이 그렇다. 옥추경은 음부경과 동급의 경으로 인식하기 어렵고, 참고 이상의 책이었을 가능성이 짙다. 옥추경에 대한 심도있는 연구는 필히 짚고 넘어가야 할 사안이 되었다. Ι교수·경희대학교 민속학연구소장. hogo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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