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어디 그냥 오던가요?

취재 노태형

겨울은 그리 쉬이 물러날 놈이 아닙니다.
매년 그렇듯 하얀 입김을 내뿜으면서 시샘을 반복하죠. 간혹 봄꽃 위에 하얀 눈을 뿌려 세상을 엎어버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겨울은 모릅니다. 그렇게 열을 내고 달려들었기에 따듯한 봄이 온다는 걸요. 만약 겨울이 조금 더 현명했다면, 결코 열을 내는 일은 없을 겁니다. 가만히 냉소만 퍼붓고 있겠죠. 그러면 아마 대지의 겨울은 길디길게 이어질 겁니다.
참 다행이죠. 그 겨울의 뜨거움 때문에 꽃이 피고 대지가 열리는 것이요. 아마 겨울은 알 겁니다. 그냥 물러나기가 아까워서 그런 게 아니라, 살랑살랑 거리는 봄이 미워서 그런 게 아니라, 속정 깊은 매몰찬 어머니처럼 그렇게라도 내질러야 봄이 더 강해진다는 걸요. 그렇게 차가운 지혜를 가진 겨울이 있어 세상은 늘 더 강해지는 겁니다.

동백꽃 구경 나섰다가 손을 데었습니다.
땅바닥에 뚝뚝 떨어져 내린 꽃을 줍다가 화들짝 놀라며 덴 겁니다. 아마 송이째 뚝 떨어져 내려 등불이 되려 했나 봅니다. 오랫동안 감춰왔던 사랑을 몰라주자 떨어져 내려서도 그이의 앞길을 밝히는 등불이 되려 했나 봅니다. ‘당신만을 사랑하는’ 그 마음이 오랜 세월 화석처럼 단단해져 변치 않는 사랑으로 달아오른 거죠. 한겨울 동백꽃이 이리 뜨거운 꽃인 줄, 몰랐습니다.
착한 사랑을 아시는지요?
부모의 사랑은 조건 있는 사랑입니다. 참 위험한 사랑이죠. 내 자식만을 생각하기에 홧병이 됩니다. 남녀의 사랑은 새싹처럼 순수할지라도 금세 떨어져 내리기에 아쉽습니다. 또 성자의 사랑은 큰 산을 넘는 듯 천근만근 힘겹기도 하죠.
잃어버린 사랑만큼 아름다운 건 없습니다. 차마 헤어지기 싫어 망설이다 망설이다 어쩔 수 없이 떠나간 사랑. 그래서 아쉬움은 미련이 되고 미련은 그리움으로 피어납니다. 어찌, 사랑한다고 다 영원하길 빌겠습니까. 사랑은 헤어짐이 있어 더 아름다운 거죠. 그렇기에 겨울과 봄 사이에서 그리움의 다리를 놓아주는 동백꽃 구경을 나섰는지요. 

동백꽃 떨어지는 소리에 한 움큼 울음이 쏟아집니다.
그 빨간 꽃 떨어지지 않으면 봄이 오지 않는다네요.
동백꽃 뒹구는 소리에 슬픔은 자꾸 깊어집니다.
아마 이별을 예감했나 보죠.
골목골목마다 애태운 흔적들이 불길처럼 번졌습니다.
‘떠날게요.’

봄이 어디 그냥 오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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