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에 홀린 조카 | 정은구

이수진 원로교무가 유성교당에 있을 때, 교당과 담을 사이에 두고 사는 교도가 있었다.
당시 교당에서는 요가를 가르쳤는데, 부부가 함께 요가를 하러 교당을 왔다 갔다 하면서
인연이 된 것이다. 그 교도 부부에게는 열댓 살 정도 된 여자조카가 하나 있었다. 그런데 조카는
밤만 되면 언제 나갔는지도 모르게 조용히 외출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새벽에 후줄근한
모습으로 돌아오더라는 것. 조카는 밤이슬을 맞으며 한참을 돌아다니고 나서야 잠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밤을 보내니 평소 학교 수업시간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일상생활도 힘겨워질
수밖에 없었다.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고 그러시더라고요. 그런 애가 아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그렇게
 
됐다는 거예요.”
이 원로교무가 생각하기에, 천도 받지 못한 영혼에 홀려서 그런 듯했다. 조카의 부모님을 불러다
놓고 이야기를 들어봤다. 그랬더니 과거에 좋지 않은 사연으로 인해 명을 달리한 삼촌이
있었던 것. “그래서 천도재를 지내기로 했지요. 와서 날을 잡고 49재를 정성스럽게 지냈어요.”
단지 삼촌뿐만 아니라, 집안 친척 중 열반한 사람들의 이름을 다 써서 재를 지냈더니 조카는 더
이상 밤에 나가지도 않고,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와 학교를 무사히 졸업할 수 있었다.
“우리가 잔치에 갈 때도 초대장이 있으면 당당하게 들어가잖아요? 영가들도 이름을 붙여주면
당당하게 찾아와요.” 반대로 영가들의 이름을 안 부르면 오히려 해코지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원로교무는 이름을 써서 재를 지내왔다고.
“예를 들어 김씨 집안이면, ‘김씨가(家) 선망선조제위’라는 말을 꼭 넣어서 이름을 모르는
영가들까지 환영한다고 적었지요.” 재를 지낼 때 잘못 지내면 영가가 해코지를 한다. 때문에
영가들을 잊지 않고 챙겨왔고, 유성교당에서 그렇게 재의 위력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는 이
원로교무다. “정산 종사님께서도 그러셨어요. 아무리 힘 없는 교무가 천도를 해도 법대로만
하면 영가가 천도를 받는다고요.”
부처님이 오백생을 닦았고, 소태산 대종사는 오만생을 닦아 부처가 되겠다고 했다. 불법 만나기가
어렵다고 하는 와중에 대종사의 법속에서 살게 되었으니 그것이야말로 최고의 행운이라고 말하는
그녀. “고속도로를 타고 가는 거예요. 길대로 실천만 하면 되잖아요.” 저승에서 몸을 받기 전까지는,
 
자기를 성찰하면서 내가 어디까지 왔는지를 돌아본다. 그리하여 다음 생에 사람 몸을 받아 어디까지
나아가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다시 이생으로 돌아오는 것.
이 원로교무는 그렇게 결국 우리 모두 성자가 되어간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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