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풍류란
- 그 형식과 내용

글. 이정재

오늘의 무속은 과거의 그것과 많이 다르다.
둘을 혼용하면 많은 혼란을 초래한다. 무교와 선교의 구분은 이런 고민의 결과일 수도 있는데, 그렇다고 종교체계에서 무속적 상관성을 간과할 수만은 없는 것이다. 작금의 무속은 특히 한국에서 그 인식도가 다른 나라와 현저한 차이를 보인다. 고등종교의 유입(특히 유교와 기독교), 식민기의 전통 단절, 군사독재와 산업화 등의 격변기를 지내면서 무속 폄하는 더욱 가속화하였다. 무당이 존경의 대상이거나 사제적 경건함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 나라는 아직 많다(일본, 인도, 동남아 제국, 시베리아, 세계 오지의 원주민 등).
조선대에도 일부 사대부들을 제외하면 궁중이나 민중들에게 무당이나 단골은 무시할 수 없는 존재였다. 일정한 사회적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한국에서는 그 기능적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는 판단이 선 다. 실제로 한국의 무속은 개인적 기복에 쏠려있고, 사회적 공동선의 역할을 온전히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대체로 한국의 문화적 속성은 일정의 문화요소를 쉽게 바꾸는 속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또 전통문화도 어떤 것은 가볍게 처리하는 특징이 있다. 장점도 없지 않을 것이나, 과거는 오늘의 거울이란 가르침의 한계를 넘어서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풍류란 무엇인가? 그 실체란 과연 있는 것인가, 아니면 형이상학적 이상만을 논했던 것일까. 그 정신과 제도가 이 한반도에 남아있기는 한 것일까. 과연 정산이 말한 풍류관은 무엇이며, 1200년 전 최치원 또한 어떤 제도를 염두에 두고 <난랑비서>를 쓴 것일까?
도가도비상도 명가명비상명(道可道非常道 名可名非常名)이듯이 풍류도 비슷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것이라고 해야할까? 풍류는 도와 관련이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최준식의 글이 떠오른다. 그는 한국의 문화를 논하면서 ‘한국문화는 틀을 거부하는 문화적 특성을 가진다.’고 했다. 돌이켜 생각하니 노자의 말과도 상통하는 일면이 있다. 어떤 제도나 조직과 언어명상도 한쪽으로 쏠려있을 때는 살아있음을 잃는다. 여기서 살아있음이란 일종의 풍류적인 것이다. 영원과의 소통이 전제된 순간의 연속, 즉 활불행이 풍류행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 행이란 개인적 사회적 공동체적 일체의 행을 모두 포괄한다.
정형화를 거부했던 한국문화는 이를 지향했고, 균형을 지키려는 속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이런 속성은 한편 무속의 속성이기도 하다. 최준식이 말한 선언은 이를 두고 한 말이다. 과거의 무속은 바로 이런 속성을 견지해왔고, 그 흔적을 한반도 도처에 남겨놓고 있었던 것이다. 풍류를 문화적인 실체로 규명하는 작업은 쉽지 않다.
신화적 제의의 모습이 주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희미하나마 신화적 흔적을 가지고 무속적이지만 틀을 가지지 않으면서도, 개별적 공동체적 신인합일의 일탈적 문화기제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렇게 논의를 좁혀보면 그 잔재의 일부를 오늘의 다양한 마을제에서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풍물, 탈놀이, 각종 연희 및 가무백희가 곁들여진 제의는 신을 맞이해 풍농과 제액초복을 비는 마을 공동체 축제다. 이는 마을을 지켜주는 당신(堂神)을 중심으로 무당이나 제관이 주축이 되어 진행하는 굿으로, 오늘도 여전히 전국적으로 전승되며 산재해 있다. 소위 지신밟기라는 것으로 잘 알려진 이것은 무교식 혹은 유교식의 형태, 혹은 둘의 혼재된 형태로 남아있다. 그리고 또 다른 흔적은 다분히 전문화(專門化)로 경화된 앉은굿과 선굿에서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쉽게 전통을 갈아치우는 한국문화의 속성 때문에 그 원형을 찾기는 어려운 일이다.
풍류 원형탐색의 여정에 고려할만한 나라는 의외로 일본이다. 일본의 경우 한국의 마을제와 같은 전통을 다수 가지고 있으며, 오히려 그 원형을 잘 보존한 사례로 세계적 정평이 나 있다. 일본의 신도(神道)는 민간신앙과 무속이 결합되어 형성된 신앙이다. 전국의 신사(神祠)에서 치러지는 정기적 비정기적 의례는 모두 신악(神樂, 가구라)이라 불리는 것으로, 우리와는 다른 체계를 세워 유지하고 있다. 이것이 원형을 잘 보존할 수 있었던 조건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또 이 가구라는 다양한 예능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를 실제로 풍류(후류, 風流)라 일컫기도 한다.
신사를 중심으로 치러지는 이러한 다양한 제의로 인해 일본은 ‘축제의 나라’ ‘풍류의 나라’라는 명칭을 얻었다. 전국적으로 펼쳐지는 다양하고도 풍성한 ‘가구라’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참으로 유구한 전통과 복잡한 조직과 지속적 관계와 헌신적 정력이 동원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엄청난 공동체의 결속이란 결과를 낳는다. 이는 일본의 유구한 유산이자 저력이기도 하다. 이 풍류적 ‘가구라’는 일본문화의 뿌리가 되면서 제의와 신앙과 생활이 둘이 아닌 성속합일의 생활을 이어가고 있어 부러움의 대상이 되곤 한다.
그러나 차츰 현대화된 오늘날 젊은이들의 불참과 무관심으로 어려움에 봉착해 있다고 한다. 한편으로 이 풍류문화는 또한 과도한 형식과 제도에 기울어져 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너무 비대해진 전통의 구조물을 운전하기에 버거운 상황이 초래되고 있다는 것이다. 버릴 것을 너무 쉽게 버림과 털 것을 가벼이 털지 못하는 두 종류의 우가 대비적으로 목격되는 상황이 아닌가 한다. 
먼 과거의 풍류적 기원은 한편으로는 의례적·형식적 흔적을 여지없이 남겨놓은 문화로, 다른 하나는 전통을 무시하고 형식과 내용을 쇄신하여 새 틀을 마련한 문화의 방향 둘로 치달았다고 할 수 있다. 이때 ‘풍류로 세상을 건지리라’를 음미할 때 어떤 틀에 대한 고민이 요구되는가가 피할 수 없는 사안이다. 이런 고민의 흔적이 일부 목격되고 있다. 기왕 언급된 마을제의 예를 들어보자. 과거의 형식을 고지식하게 고집하는 것과 이를 쉽게 버리는 것은 모두 균형을 잃은 것이다. 말하자면 마을제를 없앨 수는 없겠으나 다른 방식으로 변형할 필요가 요구된다 하겠는데, 실제로 이런 현상이 곳곳에서 목격된다. 일례로 어느 마을에서는 매년 음력 시월 초순 마을제를 지내는 제장에 스님, 목사, 무당이 함께 공동 제의를 올리는 경우다. 마을에 교회와 절과 단골네가 있으니 어느 하나로 기울어질 수 없다는 것이 이유다. 이 정신에는 엄청난 것이 숨어있다. 이것을 혼합주의, 공동체성 등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종교와 교단을 염두에 두었을 때 다른 해석이 있어야 한다. 이를 풍류도의 한 측면이면서 영성회복의 여정이라 칭할만하지 않을까?
풍류는 영성회복과도 관계가 있다. 현대는 이성에서 감성으로의 전환을, 또 나아가 그 융합을 지향한다. 이는 달리 표현해 주체적 공동체성의 회복을 의미한다. 풍류는 교리중심이 아닌 것을 지향해야 하는데, 이는 과거적 이념 편향(종교적 교리)의 극복을 의미한다. 그동안 상실했던 신화적 원초성과 감성을 회복하여 균형을 이루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전근대적(전합리적) 신인합일이 아닌 다른 차원의 접근, 즉 후근대적(후합리적) 성속합일의 영성을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켄 윌버의 개념). 과거의 풍류가 아닌 현대의 후합리적 풍류가 되어야 하는 것이리라. 
Ι교수·경희대학교 민속학연구소장. hogo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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