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의 이성과 감성

천도(天道)가 있을까, 신이 있을까, 기도는 들어줄까…
결국 자신의 정성·노력이 좌우

새로운 한 해를 맞았다. 정유년 새해다. 지난 한 해는 역사에 남을 굵직한 사건들이 유난히 많았다. 국정농단에서 시작한 혼란이 급기야 대통령 탄핵으로까지 이어졌다. 그 혼란은 쉽게 그칠 것 같지 않다. 새해에도 이어질 전망이다.
정유년은 역사적으로 국란이 많았다. 정유재란이 가장 큰 사건이다. 나라의 명운이 걸린 외침이기도 했다. 국내적으로는 정유독대란 사건이 있다. 1717년에 당시 노론의 영수였던 이이명이 숙종과 독대한 사건으로, 이것도 정유년에 일어났다 해서 정유독대라 부른다.
서민들은 이러한 혼란보다 편안하게 먹고 살 수 있는 안정된 사회를 원한다. 그러한 심정을 담아 일몰을 보며 한 해를 정리하고, 일출을 보며 새로운 소망을 담아 기도를 한다. ‘올해는 남편의 승진을 꼭 이루어 달라.’ ‘올해는 우리 아들(딸 혹은 손자) 수능시험 잘 보게 해달라.’ ‘올해는 제발 편안히 먹고 살 수 있도록 해달라.’ 등등 온갖 소원을 담아 두 손을 꼭 모은다.
며칠 전 장안에 이름난 도사 두 명을 찾아 닭과 관련된 운세와 2017년 국운을 들어봤다. 두 도사의 공통점은 “내년도 매우 혼란스럽지만, 전혀 의외의 인물이 나와 한반도 통일의 기운을 이어갈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그나마 다행이다. 구체적으로 설명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2017년 국운은 매우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임진생과 2016년의 병신년이 부딪혀 이미 혼란에 빠져 있다. 더욱이 정유년은 큰 국난이 많았던 해이다. 임진년과 병신년, 정유년의 삼각파고가 매우 크게 일어 혼란이 극에 달할 전망이다. 닭은 혼란상황을 오래 견딜 힘이 없다. 인내력이 부족하다. 쉽게 무너진다. 특히 6월부터 8월까지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빠질 수 있다. 심지어 폭력사태까지도 발생할 수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통령으로서 박근혜가 일찍 임기를 마치는 방법 외에는 없다. 일찍 임기를 마쳐 혼란을 최대한 앞당기면서 더 큰 혼란을 없애는 것이다. 하지만 그 혼란은 훌륭한 인격을 가진 인물이 나타나서 슬기롭게 헤쳐나갈 것으로 보인다.”
제발 우리 사회가 혼란보다는 안정되게 흘러가도록 기도를 해본다.
조선의 제22대 왕 정조는 세손이던 스무 살 무렵, 무당이 굿을 하는 모습을 보고 불편했던 것 같다. 그래서 <홍재전서(弘齋全書)> 2권에 있는 ‘무(巫)’란 시를 남긴다.

‘苦竹叢鈴忽神(고죽총령홀아신)
방울 달린 왕대 흔들어 신령을 불러들이고
丁寧禍福口中陳(정녕화복구중진)
입으로는 간절하게 길흉화복을 말하네
避凶趨吉渠何得(피흉추길거하득)
흉한 일 좋은 일을 저들이 어찌 맘대로 할 수 있으랴
邪說紛紛惑庶民(사설분분혹서민)
요사스러운 말 흩뿌려 백성을 홀릴 뿐’



그런데 우리가 기도를 할 때 누구에게 할까? 기도를 하는 대상은 누구일까? 신(神)일까, 신은 과연 있을까? 신이 있다면 우리의 기도를 받아줄까? 받아준다면 어떻게, 왜 받아줄까?
정조는 무당을 보면서 혹세무민한다고 생각한 듯하다. 그렇다면 고대 왕이 무당을 겸직했던 신정(神政)시대는 어떠했을까. 단군왕검은 신정시대의 시조이자 우리 역사의 시작이기도 하다. 단군은 신과 통하는 신권을 상징하고 왕검은 왕권을 대표한다. ‘신정시대에도 무당이 혹세무민한다고 판단했을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사람들은 무당이 혹세무민한다고 판단하면서도 매년 혹은 매번 기도를 한단 말인가?’라는 생각도 든다.
신은 인간에게 아무 것도 해주지 않는다고 한다. 천도무친(天道無親)이라는 말이 있다. 하늘의 도는 지극히 공평하여 누구라고 더 친절히 대하는 일이 없고, 다만 상여선인(常與善人)을 덧붙여 항상 착한 사람에게만 친절을 베푼다고 한다. <노자>에 나온다. ‘천지불인 이만물위추구(天地不仁 以萬物爲狗) 성인불인 이백성위추구(聖人不仁 以百姓爲狗)’라는 말도 있다. 천지는 어질지 않으며 만물의 생장성쇠를 자연스럽게 두고, 성인 역시 이쪽저쪽 깃발을 흔들지 않고 백성이 조화롭게 살도록 그대로 내버려 둔다는 의미다. 노자의 무위자연 사상이다. 결론적으로 신은 있더라도 공평하고 치우침이 없으며, 자연도 그대로 두더라도 순환하는 원리가 있다는 것이다. 선하게 사는 자만이 복을 받고, 불행이 오더라도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행복한 삶을 영위한다.
사람은 자신이 노력과 정성을 기울이지는 않은 채 기도의 내용이 이뤄지지 않는 것만 원망을 한다. 신은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기 위한 존재가 아니다. 신은 절대적인 존재다. 인간의 기도에 의해 좌지우지 되지 않는 절대적인 자리의 존재다. 신이라는 초월적인 존재에 빠져 혹세무민하거나 당하는 인간이 있다면, 그건 그 자신의 잘못이다. 그것이 한 개인으로 끝날 때가 아니라 국가를 망칠 때도 가끔 있다. 지난해와 같은 사례가 대표적인 경우다. 그래도 인간은 새해를 맞아 또 기도를 한다. 이성으로 판단한다면 도저히 상상이 안 되는 행위다. 그러나 인간 삶의 70% 이상이 과학으로 증명될 수 없기에 기도는 계속된다.
새로운 일 년을 맞아 차분히 개인의 목표를 세우고 정진할 때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만이 돕는다(Heaven helps those who help themselves).’고 했다. 자신이 최선을 다하고 노력과 정성을 들여야 치우침이 없는 신은 그의 편이고, 그래야 그의 삶이 더욱 행복해진다는 사실은 동서고금을 통해 증명됐다. 올해 목표를 한 번 세워보자. ‘내 삶의 주인은 나니 최선을 다해 나의 삶을 행복하게 가꾸어보자.’고. 그러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 장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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