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으로 그리는 여여한 삶
범해 김범수 화백


취재. 정은구 기자

세계적인 화가가 되기 위해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던 청년.
전통 안료를 재현해 동양전통회화를 모사하는 일본교육을 섭렵하고 돌아온 그가 한국의 전통회화를 지켜온 지도 수십 년이 되었다. “호분(바닷가 모래사장에서 풍화된 조개껍질을 빻아 만든 흰색 안료) 하나도 호분답게 쓰려면 15~20년 정도는 써봐야 해요.” 전통을 토대로 작품 세계를 추구해나가는 김범수 화백(원광대학교 동양학대학원 교수, 법명 응규, 장성교당)이다.

전통에 입각한 미래
“회화작품들은 그 시대를 반영하는 가장 좋은 척도라고 생각해요.” 시대와 민족, 단체뿐만 아니라 개인의 역사도 대변하는 그림. 김 화백은 이러한 회화작품 속에 개인의 철학과 사상뿐만 아니라 추구하는 미래성 등이 모두 내포되어 있다고 말한다. “회화는 색상과 선과 점 등이 어우러져서 일정한 공간을 가장 아름답고 완벽하게 구성해나가는 거거든요. 그런 점에서 본다면 부처님이나 대종사님의 진리와 딱 맞더라고요.” 부처의 깨달음이란 결국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는 균형 잡힌 생각과 행동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회화작품을 복원하고 보존하는 일 또한 중요할 수밖에 없다는데.
“인류가 남긴 모든 유·무형의 소산들은, 이른바 성주괴공 하며 산화해요. 그러니 문화재의 보존을 위해서 복원을 하는 것이죠.” 선조들이 사용했던 재료와 기법을 통해 작품을 복원하는 작업들. 그러한 작업을 통해 전통에 입각한 회화의 가치관을 확립해왔다는 김 화백의 작업실에는 다양한 동양화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런 가치관 하에 저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해나간 거죠. 전통을 통해 새로운 미래관을 추구하는 거예요. 전통이란 것이, 그냥 보고 느끼면 바로 나오는 게 아니에요. 그것을 시현해봐야죠.”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중앙아시아벽화, 국립민속박물관에 소장된 김홍도의 행려풍속도, 경주박물관에 소장된 원효대사의 진영, 국립전주박물관에 소장된 영조어전…. 숱한 작품들이 그의 손에서 되살아났다.
학교에서는 복원을 가르치고, 작업실에선 인물화 및 개인 창작 작업으로 여념이 없다는 그. 인물화 역시 전통 초상화 기법을 응용하되, 균형미를 가질 수 있도록 보완한다. 연신 감탄하려니 김 화백이 너털웃음을 짓는다. “역대 조사들의 진영만도 70점 이상 그렸어요. 조만간 화집도 나올 예정이고요.”

최고의 종교화
“제가 볼 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장 보편타당한 종교가 원불교인 것 같아요.” 그동안 겪고 알아온 지식과 정보들을 기초해서 판단해볼 때, 가장 마땅한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원불교라는 그. 매일 아침 108배를 하고, 염불을 외며 생활한다는 그는 하루라도 빼먹으면 몸이 찌뿌듯하다며 고개를 내젓는다. “기적을 바라는 게 아니라, 균형 잡힌 사고와 균형 감각이 있는 나를 만들기 위함이죠.”
평소 생활 속에서 수행을 하는 그이지만, 무엇보다 좋은 실천은 역시 이 좋은 법을 주변의 인연들에게 전하는 일일 것이다. 꾸준히 주변의 좋은 사람들을 입교시켜왔다는 그는 작년(2016년) 광주전남교구에서 교화상을 받을 정도로 열성적인 교도. 고위 공직자나 총장 등, 사회의 저명한 인사들을 줄줄이 입교시켰다는 그의 내력에 누군들 놀랄 수밖에! “비결이 뭐냐면요, 진솔한 모습을 보여주는 거예요. 교도로서 우리의 삶을 그대로 보여주는 거죠.”
그런 그에게 욕심이 있다면, 원불교 교사의 여러 극적인 장면을 채색화로 그리는 작업이다. “역량이 된다면 100상 정도를 그리고 싶어요. 그리고 구인선진과 여성선진들의 인물화도 그려야 하고요. 할 게 많죠.” 최고의 종교화를 그리고 싶다는 앞으로의 바람. 장성에 마련된 고즈넉한 작업실엔, 김 화백의 여여한 삶이 그렇게 그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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