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당의 주인공

  글. 김법조 교무

교당은 해외생활의 외로움과 어려움을 해결하는 의지처로, 고국과 고향의 인정과 음식을 나누고 법정을 나누는 쉼터로, 마음공부로 행복한 삶을 열어가는 터전으로써의 역할을 하고자 하였다.
제주 출신인 장인화 교도는 교당 앞집에 살고 있는 친구를 찾아왔다가 인연이 되었다. 본인이 가진 자본을 전부 투자하여 가게를 시작한 탓에 불안한 마음으로 불면의 나날을 지내던 그는, 원불교를 만난 날부터 백일기도를 시작하였다. 그는 오래된 교도처럼 교당의 불편하고 부족한 점들을 고치고 채워나갔다. 지인들을 입교시키고, 벚꽃 피는 계절에는 음식을 장만하여 대자연 속에서 교도들의 힘든 심신을 충전시켜주기도 했다. 주인 없는 교당의 첫 주인이 되어, 연원들을 주인으로 키워가는 주인이다.
이전의 교당은 대지 13평의 좁은 교당이었지만, 3층 방 두 칸은 유학생을 대상으로 하숙을 하였다. 좁은 세면장과 화장실을 공동으로 사용해야 하기에 신심이 없으면 생활하기가 쉽지 않았다. 유학생들은 교당에서 하숙을 하거나 교당 근처에서 살며 한방무료진료,민속놀이,일본어교실,한글교실,어린이법회를 운영하는 데 큰 힘이 되었다. 교도가 없던 당시 ‘부교무처럼! 봉공회장처럼! 청년회장처럼!’ 교당의 주인이 되어 “일본교화를 어떻게 해야 하나? 일본인, 재일동포, 한국인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를 함께 생각하며 방법을 찾아나갔다. 공부하고 아르바이트하느라 힘든 상황에서도, 일요일이 되면 더욱 바쁘게 지냈다. “아까운 청춘이 다 지나간다. 낭만도 없이….”라고 하소연하면서도 휴일없이 교당 일에 앞장섰던 인연들이 있었기에 많은 일들을 추진할 수 있었다.
교당에서 하숙하며 입교해 “간사 해볼래?”라는 말을 교무님에게 인정받았다고 자랑하던 이원선 교도! 모든 행사의 처음부터 마무리까지 주인정신으로 챙기고, 친구들을 교당으로 안내한 임은수 교도! 친구 따라 교당에 왔다가 봉사활동 하며 입교해, 결혼 후에도 자녀들과 함께 교당을 찾는 유도연 교도! 그는 바쁜 생활 속에서도 일요일 아침에는 우태와 카나를 교당에 데려다 놓고 일을 하러 가는데, 카나는 졸릴 때 ‘일원상서원문’으로 시작해서 ‘참회문’까지 독경을 해주면 잠에 들곤 했다. 말을 하게 된 3살 즈음부터는 ‘일원상서원문’을 하면 “잠 안 자요.” 라며 손사래를 친다. 좁은 교당에서 맘껏 뛰어놀지도 못하고, 추워서 히터 앞에 움츠리고 앉아 블록놀이를 하던 우태와 일원상서원문이 자장가인 줄 아는 카나는 오사카교당 미래의 주인공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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