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지금 행복합니다

충분히 필요한 만큼을 가졌기 때문에 더 욕심내지 않을 겁니다.

글. 김윤희

미니멀 라이프는 제 모습 그대로 제 자신을 사랑하게 된 시작점입니다.
한때 저는 쇼핑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괴롭히던 사람이었습니다. 친구들이 꾸미는 것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중학교 무렵부터 ‘나는 뭔가 잘못됐나?’라는 의심을 가졌습니다. ‘여자는 쇼핑을 좋아한다.’는 얘기를 들으면 ‘나는 아닌데…. 나는 여자가 아닌가? 여성스럽지 못한가?’라는 생각이 들었고, 친구들과 쇼핑할 때면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서 있는 시간이 괴로웠습니다. 자꾸 이게 더 좋은지 저게 더 좋은지 물어보는데 제가 보기엔 비슷해 보였지요. ‘다들 알아서 예쁜 옷을 찾아서 잘 사는데, 나는 왜 못 고를까?’ 하는 고민으로 위축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아주 우연히 미니멀리스트에 관한 글을 읽었는데, 너무 충격적이었습니다. ‘적게 소유하면 더 풍요롭다.’는 신조로 최소한의 물건만 가지고 살아간다는 내용이었는데, 침대나 소파 등 대부분의 가구를 버리고, 큰 공간도 필요 없으니 작은 집으로 이사한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제일 놀라운 것은 버릴수록 행복하다는 얘기였습니다. 많이 가질수록 행복할 것 같은데 버릴수록 행복하다니, 행복에 대해서 궁금해졌습니다. ‘행복이 뭐지?’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직장을 구해서 열심히 돈을 모으고,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좋은 집을 마련해서 자식을 잘 키우는 것. 다들 그렇게 사니까, 나에게도 그렇게 살라고 하니까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고 그걸 다 이루어야 행복이 찾아온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치 임무를 완수해야 보상을 받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버려서 행복한 삶을 사는 사람들을 보니, ‘행복은 뭔가를 가지거나 해내야만 생겨나는 것이 아니구나. 세상엔 여러 가지 삶의 방식이 있는데, 내가 너무 한가지만 쫓고 산 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더군요. ‘나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살면 행복할까?’ 인생을 통째로 복습하며 성격의 장단점,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을 곰곰이 생각해봤습니다.
고민을 거듭하고 나서야 저는 쇼핑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화장을 안 해도 별로 부끄럽지 않고, 매일 거의 비슷한 옷을 입어도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습니다. 정리정돈을 잘 못하기에 애초 잘 어지르지 않고, 요즘엔 다 치워버리면 청소가 훨씬 쉽지 않을까 싶어서 벼르고 있는데 막상 게을러서 조금 많이 미루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저를 힘들게 했던 건 ‘타인’이나 ‘정답’과 나를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부족한 부분만 집중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별로 예쁘진 않지만 그래도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비록 완벽하진 않아도 부족한 모습까지도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는 의무감으로 쇼핑에 나서지 않습니다. 물론 지나가다 마음에 드는 것을 발견하면 사겠지만, 충분히 필요한 만큼을 가졌기 때문에 더 욕심내지 않을 겁니다. 물건보다 가치로 채우는 삶을 살기 위해 계속 고민하고 행복함을 유지하기 위해 더 노력할 겁니다. 저는 지금 매우 행복합니다.

선택과 집중

나는 강심장도 아닌데다가, 평소에 걱정이 많아
일어나지 않을 일에 대해 끊임없이 걱정하는 편이다.

글. 조 혁

얼마 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인 ‘K-pop스타’를 시청하던 중 한 참가자의 실력에 크게 놀랐던 적이 있다. ‘이성은’이라는 참가자는 푸르른 들판에서 흥얼거리며 기타를 치는 소녀의 모습을 연상케 했고, 안정적인 음색과 프로 못지않은 연주 실력으로 심사위원과 관객을 충격에 빠뜨렸다. 그 모습을 보며 ‘이 순간 빛을 발하기 위해 무대 뒤에서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이 프로그램을 좋아하는 이유가 있다. 자신의 꿈에 열정을 가지고 한 곳만 보고 달리는 참가자의 모습을 볼 때면 나 또한 삶에 대한 열정을 다시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심플한 삶 또한 이런 것이 아닐까. 정말 좋아하는 무언가를 향해, 목표한 것을 향해 직진하는 것!
다른 상황이나 사람의 의견에 구애받지 않고 ‘내가 좋아서 스스로 하는 일’을 찾았을 때 나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아마 어린아이가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처럼 가장 순수하고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생각한 것처럼 심플하게 살기 어렵다. 목표가 있다고 해도, 생각들이 많아 직진을 하기 힘들다. 나는 강심장도 아닌데다가 평소에 걱정이 많아 일어나지 않을 일에 대해 끊임없이 걱정하는 편이다. 하지만 요즘 들어서 깨닫고 있다. ‘불안하고 걱정되면 단순하게 행동하자. 내 걱정은 내가 바람직하게 생각하는 방향으로 행동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므로.’ 
2017년의 시작에서 나 자신에게,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무언가를 한 적은 있는가? 지금의 걱정을 덜기 위해서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첫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은 여행이다. 10년지기 베스트 프렌드와 여행을 간 순간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친한 친구와 함께해서 기쁨도 재미도 두 배였다. 오랜 시간을 함께했지만 단둘이 여행을 간 적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역시 척척 잘 맞는 환상의 호흡이었다. 게다가 즉흥 여행의 묘미까지! 기회가 되면 어디든 친구랑 여행을 또 가고 싶다.
두 번째 질문에서, 현재 나의 가장 큰 걱정은 ‘나와 정말 잘 맞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이다. 20대 후반이 되면서 친구들과의 대화는 언제나 연애로 시작해서 결혼으로 끝난다. ‘언젠가 만나겠지.’라는 생각으로 걱정 없이 지냈는데 벌써 2017년이다. 마냥 기다릴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의 기회를 늘려가고 나 자신부터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생각을 정리하고 나니, 무언가 주변이 정리된 듯 환해 보인다.

빈 마음이 필요한 순간들

답 없이 되풀이 되는 상황과, 세모와 네모가 가정에서 충분히 받지 못한 사랑,
그리고 ‘이 아이들은 고작 일곱 살인데….’ 하는 수많은 생각이 지나갔다.

글. 이미화

“세모야~, 네모야~.” 3년 전, 이 아이들의 이름을 하루에 몇 번이나 불렀는지…. 올해 초등학교 3학년이 된 세모와 네모는 쌍둥이 형제다.
이 둘은 유치원에 입학하던 날부터 어마어마했다. 처음 온 것이 무색할 만큼 익숙하게 뛰어다니고, 소리를 지르고, 데려오면 도망가고 데려오면 또 어디론가 사라지고…. 그야말로 막무가내였다.
세모와 네모는 다른 아이들보다 적응이 훨씬 뛰어났고, 그래서 더욱 잘 나가거나 잘 숨었다. 도대체 수업을 할 수가 없었다. 세모가 나가면 네모가 나가고, 세모를 데려오면 네모가 나가고…. 유치원 현관문을 잠가보기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처음에는 유치원 주변에 있던 아이들이 학교 운동장, 교문 밖까지 나갔다.
이 둘의 행동반경이 점점 넓어질수록 반 아이들에게 정말 미안했다. 세모와 네모가 죄책감이 없다는 것이 더 큰 문제였다.
앞에 친구가 있는 것을 보았어도 일부러 부딪히고, 발밑에 무언가 있는 것을 알지만 그냥 밟아버렸다. 물어보면 “몰랐어요.”란다. 이유가 없었다. 친구에게 “미안해, 다음부터는 조심할게.” 하고 사과를 시키는 것도 한두 번이지, 대화로 해결되지 않고 산 넘어 산이었다. 한 명이 해결되면 남은 하나가 문제였다.
처음에는 혼도 내봤지만 통하지 않았다. 결국 감정을 다 내려놓고 차분히 이야기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세모와 네모는 또래 갈등이나 과잉행동 등의 문제 상황을 제외하면, 그저 천진난만한 장난꾸러기였고 학습능력도 뛰어났다.
어느 날, 세모에게 물었다. “세모야 선생님이 어떻게 했으면 좋겠니? 선생님이 어떻게 할까?” 질문을 하며 나는 눈물을 꾹 참았다. 하지만 결국 세모를 안은 채 울고 말았다. 이 방법 저 방법을 다 써도 답 없이 되풀이 되는 상황과, 세모와 네모가 가정에서 충분히 받지 못한 사랑, 그리고 ‘이 아이들은 고작 일곱 살인데….’ 하는 수많은 생각이 지나갔다.
내가 세모와 네모에게 바라던 것은 ‘조심’ 그것 하나였다.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나의 행동으로 인해 누군가 다칠 수 있으니 한 발 물러서며 살피는 것. 이걸 알려주기 위해 수도 없이 “세모야, 네모야.”라고 이름을 부르며 타일렀다.
‘다른 아이들은 안 그러는데 세모랑 네모는 어째서 이러지? 이것만 안 하면 좋을 텐데.’라고 불평했고, 바른 행동을 하는 아이를 기준으로 세모와 네모를 내가 원하는 틀 속에 맞추려 했었다.
타인을 바꾸려 하기 전 한 발 물러나, 상대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는 비워진 마음이 필요했던 것은 아닐까? 만약 모든 상황들을 이 마음으로 마주한다면 순간순간에 만족하고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붙들고 있던 마음이 무너지는 순간이 올 것이다. 그게 오늘이 될 수 있고 내일이 될 수 있겠지…. 그럴 때마다 세모와 네모를 생각하며 마음을 비우고 느리게 생각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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