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학 풍류론 유감
글. 이정재

풍류는 열려있는 현대적 종교의 모습을 지향하는 바와도 무관치 않다.
전 세계의 종교적 추이는 열려있는 종교, 부드러운 종교의 모습을 지향한다.
그 방법론의 하나로 풍류는 대단히 중요하나, 이에 대한 온전한 이해는 여전히 흡하다. 원불교에서도 아직 그 접점을 찾지 못한 느낌이 든다.
4000년 전에 존재했던 한민족 국가인 고조선에는 한밝사상과 궤를 같이하는 교(仙敎)가 먼저 있었다. 선교는 주변의 무속(巫俗)을 받아들여 상하층간의 화를 이루며 번영을 하였는데, 이를 풍류문화 혹은 풍류도라 하였다. 이런 류의 전통은 고려대까지 무리 없이 이어져 왔으나 성리학을 취한 조선대에 단절이 었고, 그 결과는 국권박탈이란 재앙으로 이어진다.
당시의 기득권층에 실망한 민중들이 스스로 이 풍류도에 근거하여 신종교를 궈낸다. 풍류문화는 유불선 삼교의 종지를 모두 갖춘 원융무애한 사상인데, 그중 불교는 특히 불교를 수용하여 미륵불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는 논지다.
다시 정리하면 한밝사상을 모체로 한 풍류에 대한 원불교적 이해는 사상사적 통성에서 선교의 풍류적 조화와 불교 미륵사상의 융합을 강조하였고, 이는 구한 역사적 전통을 가지고 있으며, 민족적 주체성을 은연 중 드러내는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한밝사상을 논한 점은 요하문명의보편성에 맥을 대고 있으며 그 통합사상적 향의원류를 계승했다는 의도가 읽혀지는 논지다. 즉 원불교는 이 유구한 풍류도를 계승한 종교다.
유병덕이 인용한 한밝사상은 최남선의불함문화론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지만 그 타당성은
여전히 학계의 논쟁점이다. 우선 둘이 다른 점은 선(仙)적인 것과 무(巫)적인 것의 간섭 차이고, 더 중요한 점은 한밝사상이 아직 학문적으로 공인된 사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더구나 ‘한밝사상의맥락으로 사상사를 일목요연하게 기술할 수 있느냐?’는 당장 제기되는 반론이다. 또한 논문은 풍류도의 주체적 미륵하계신앙의 수용과 성과를 검토하면서도, 정작 오늘의 주체적 수용에 풍류적 대안이 무엇인지를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다. 논문의 제목 ‘풍류도와 미륵신앙’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다. 미륵신앙 부활의 정당성에 초점이 추어진 연구였기 때문이다. 선(仙)과 무(巫)의 선후관계는 중요한 문제다. 인류문명의 사상사는 원시사회에서 고대사회로 전환하면서 종교적 조직이 강화되고 전문화 되어간 것으로 보는 것이 상식이다. 원시적 자연종교(무속)의 전통에서 제도적 종교(선교 혹은 도교)로 발전되어 갔다. 신종교의 전통을 강조하기 위해서 피해갈 수 없는 것은 무속에 대한 언급이다.
논문은 이를 대체하는 수단으로 선(仙)적인 것과 한밝사상을 등장시켜 선주무종(仙主巫從)의 논리를 개발하였다. 논문에서 주장하는 무속의 외래전래설은 설득력이 부족할 뿐 아니라,
미륵불을 겨냥한 무리한 논지라는 인상을 피해갈 수 없다. 한밝사상과 미륵불교 둘의 혼합이 화랑도와 여하한지의 문제, 그리고 풍류와 종교의 결합은 어떤 양상인지에 대한 설명도 모호하다.
최남선의 소위 불함문화론은 중국의 동북공정이 전개되는 과정에 대한 대응논리로 취해지곤 하며, 요하문명과 홍산문화에까지 거슬러가는 방대한 안목이 요구되는 사안이다. 즉 동이족을 중심으로 했던 요하문명이 불함문화의 교지를 가지고 이어지다가 해체되어 몽골, 만주, 조선, 일부 중국으로 흩어진 과정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논의는 현재 학계의 뜨거운 감자가 되어 갑론을박과 색깔론, 나아가 역사 왜곡과 날조로까지 확산되는 조짐이다. 유병덕의 한밝사상과 풍류사상은 이런 역사적인 거시적 과정을 염두에 둔 것이고 그 여정의 종점에
신종교적 출현이 자리하고 있다는 논지이나, 앞서 지적한 해결점들이 남아있다.
근래 <환단고기>가 증산도를 중심으로 역주되어 이 부분에 대한 재야학자 중심의 관심이 뜨겁게 이어지고 있고, 점차 강단학자들도 관심을 가지는 상황이다.
큰 틀에서는 유병덕도 같은 논조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겠지만, 시각차는 적지 않다. 강증산과 소태산의 근본적 차이이기도 하다. 한쪽은 사상과 역사의 획일화 경향이고, 다른 한쪽은 초역사적 사상의 동일화 확정이라 할 수 있겠다.
불함문화론을 논하는 자리에서 중요 지점은 신화적 접근이다. 최남선이 그랬고 재도 일부 신화학자들도 그렇듯이 광활한 구대륙의 구비전승에 대한 비교연구는 놓을 수 없는 학문영역이다.
중국의 동북공정은 물론이고 서남공정과 서북공정 등이 모두 구비전승물 즉 신화와 영웅서사시의 중국화와 맞닿아있다는 점도 이를 입증하고 있다. 허나 중국이 무리한 공정에 매달리고 있는 이유는 중국의 중화주의의 확립에 있다.
요하문명이 중국과 가진 상관성은 일부(특히 산동반도 일대)이고 동이족에 더 치우쳐있다. 그의 중국화에 걸림돌이 되자 동이족을 아예 자국의 선조로 탈바꿈시키려는 지경에 이른다. 오랑캐로 몰아버렸던 동이의 치우마저 이제는 자신의 조상으로 바꿔 한족중심의 중화론으로 정립되었다.
신화의 역사화는 국가와 종교를 불문하고 이제는 더 이상 허용될 수 없는 시대착오적인 사안임을 생각할 때 심히 걱정스러운 부분이다.
한밝사상은 이런 역사과정에서 발생한 다양한 태양숭배사상의 일종이라 할 수 있다. 인류가 태양을 숭배하기 시작한 것은 그렇게 오래의 일이 아니다. 약 만 년 전 농경이 집중적으로 시작되면서 절대적인 강수량의 주관자를 하늘로 설정하면서 비롯된 것이다. 농경의 경제단계에서 마련된 태양과 하늘은 신화적 신앙 차원으로 발전된다. 즉 그 이전부터 이어오던 무속사상을 그 기저에 두고 농경재배단계의
천신과 하늘의 숭배 사상이 더해진 것이다. 이 둘은 인류문명사의 수렵채집기에서
농경재배문화로의 전환과정에서 비롯된 동물숭배를 주로 했던 무속과 농경을 정하는 하늘숭배의 결합과 변화과정으로 이해된다. 그 과정이 단순한 것만은아니었다. 여기에 다시 동물 길들이기와 식물 길들이기(재배기술)의 과정 그리고
파생적 유목목축문화, 기마문화, 반농반목문화, 반농반어문화 등 다양한 양상의
전개는 그들의 필요에 따른 종교신앙적 다양성으로 이어진다. 고등종교도 이런
과정의 연장선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밝사상이 유구한 요하문명을 계승했고, 오늘의 원불교로도 이어진다고 가정해도 여전히 문제는 남는다. 풍류도의 역사적 줄서기로 풍류도와의 상관성이 마무리 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 원리적 내용이 무엇이며 그것을 오늘에 어떻게 재현할 것인지가 여전히 모호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원불교에서 논하고 있는 풍류란 과연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열려있지 못하고 부드럽지도 않을 뿐만이 아니라 여전히 엄격하기만 한 종교문하에서 언감생심 풍류라니! 그 간격을 어떻게 줄일 것인가? 필자가 아는 한 이에 대한 혼란스런 논의는 처음부터 선교(仙敎)라는 것으로 단추를 잘못 꿰었던 데서 비롯된 것이다.
인내천(人乃天), 즉 천권(天權)이 인간에게 부여된 시대, 우리는 유·불·선과 속을 모두 넘어서는 새로운 인간적 영성회복의 시대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Ι교수·경희대학교 민속학연구소장. hogo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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