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탁소 24시, 깨끗하고 정갈한 옷매무새를 만들어주는 곳

옷 좀 살려주세요


취재. 정은구


하늘이 어스름 밝아오는 8시, 신당동 태양세탁소의 수선대에 불이 밝게 들어왔다. 천장에 가득 매달린 옷들과, 옷 아래에 매달린 손님들의 이름표. 자그마한 세탁소를 꽉 채우는 옷 냄새는 가게 문을 열자마자 물씬 밀려온다. 가지런한 옷을 보며 세탁소 안쪽, 따뜻한 아랫목에 앉아 있던 김도선 씨가 몸을 일으켰다. 세탁소 문을 열고 빼꼼 고개를 내미는 손님을 본 까닭이다.
“어서 오세요.” “수선 돼요? 여기가 불에 눌렸는데.” 손님이 슬그머니 패딩을 내민다. 솜이 드러날 정도로 그을린 팔 부분을 요리조리 살피던 김 씨가 패딩의 속주머니를 가리킨다. “이놈 뜯어다 붙이면 되겠네.” “어차피 일할 때 입는 옷이니까 막 해주셔도 돼요.” 그 말에 김 씨의 표정이 대번에 어두워졌다. “일할 때 입는 옷인데 아무렇게나 해주라고 하면 안 하지.” “그러게요.” 멋쩍게 웃는 손님의 모습에, 김 씨도 결국 웃고 만다. “옷을 살려달라고 하면 살려는 드리는데…. 정성껏 해 드릴 테니까 날짜는 넉넉하게 일주일 주세요.” 똑같은 말이라도 ‘옷 좀 살려주세요.’라고 하면 얼마나 좋을까? 아무렇게나 해달라는 말을 들으면 야박스럽게 고개를 젓게 되기도 한다. 아마 그러는 것도 다 옷에 대한 애정이 있는 까닭일 터다.
김 씨가 이 자리에서 세탁소를 운영한 날이 12년. 67년 동안 재봉틀을 만지고 살아왔다. 평생 만져온 재봉틀이니 간단한 수선 하나도 그 솜씨가 다를 수밖에. 다른 가게에서 수선한 손님들이 마음에 안 든다며 다시 찾아오는 경우도 더러 있다.



해가 중천에 떠오른 한낮, 김 씨는 손님이 밑단을 줄여달라고 맡겨둔 바지를 꺼내든다. 골목길을 오가는 분주한 걸음소리를 들으며, 그는 조심스럽게 실밥을 뜯어낸다.
지금이야 세탁소를 소소하게 운영하고 있지만, 본래 양복장이로 살아온 그다. 광복이나 6.25전쟁, 군사독재시절 등 굵직한 역사 속에 살아오면서 급변하는 옷의 흐름을 따라 살았던 나날. 휴전이 되던 해, 양복감이 생산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벌이가 쏠쏠하기도 했다. 그는 구불구불한 실밥을 빼내며 가만히 생각에 잠긴다. 양복점을 운영할 때는 밤샘 작업도 꽤나 많았다. “양복을 그렇게 어렵게 만드냐. 나는 옷이 뚝딱하면 나오는 줄 알았다. 정말 정성스럽게도 만든다.”던 손님의 말은 아직도 생생하다. 양복 한 벌을 만들어도 몸의 치수가 아닌, 마음의 치수를 재야 한다는 걸 진즉 깨달은 그. 그러니 손님 마음에 맞는 양복을 만드는 그의 모습도 곁에서 보기에 꽤나 정성스러웠을 것이다.
바지를 한쪽으로 밀어둔 그가 세탁소와 옆으로 연결된 한복집을 건너본다. “예당, 잔돈 좀 갔다 줘~.” 한복을 만드는 아내가 그 소리를 듣고 나온다. 아내는 전통기능전승자로 인정받을 만큼 한복을 훌륭하게 만들지만, 양복 일은 전혀 돕지 못한다. 양복을 하려면 반드시 쇠골무를 껴야 하는데, 골무 훈련만도 삼 개월은 고생해야 하는 탓이다. “양복점 아주머니가 쇠골무를 못 껴.” 우스갯소리로 놀리는 김 씨의 말에 아내도 그저 웃는다. 어디 쇠골무 때문만 일까? 양복 바늘은 아주 짧아서 긴 바늘만 사용하던 아내는 도통 적응할 수가 없다.



양복 일은 어려워도 못하는 게 없다. 그런데 세탁 일은 쉬워도 안 되는 것이 많다. 김 씨는 방금 들른 손님들이 두고 간 세탁물들을 정리한다. 때라는 것이 숫자를 셀 수 없을 만큼 많은데, 그것을 모두 깨끗하게 빼낼 수 있는 게 세탁 기술은 아니다. 못 빼는 때도 많은 것이다. 그러니 육천 원짜리 정장 한 벌을 세탁하더라도 어려움은 천차만별이다. 손님에게 옷에 묻은 얼룩이 뭐냐고 묻기도 하지만, 보통은 “나도 모르죠.”라는 대답이 돌아오기 일쑤다.
옷을 정리한 김 씨가 재봉틀 앞에 앉는다. 아까 밑단을 뜯어낸 바지의 길이를 자르고 다시 박음질을 하려는 참이다. 그가 일을 배울 때는 이렇게 좋은 재봉틀이 없었는데, 요즘 기계는 참 좋아졌다. 안감의 먼지를 털어낸 그가 검은 실을 재봉틀에 꿰어낸다. 수선 하나를 해도 옷을 만지는 시간이 가장 좋다. 그의 나이가 벌써 여든 둘인데도 이렇게 수선대를 불 밝히는 건, 일을 재미있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그는 양복점을 다시 열고 싶다는 꿈이 있다. 그가 만든 양복을 손님이 입고 나갈 때 느껴지는 성취감과 기쁨이 남다른 까닭이다. 지금에 와서는 돈을 벌기보다는 그가 알고, 연구하고, 개발한 기술들을 후대에 전수하고 싶다는 마음도 있다. “팔다리가 들어간다고 양복이 아니야. 이런 기술들을 전부 누구에게 전해줘야 하는데….”
가물가물하던 하늘은 어두컴컴해지고, 부산스럽던 골목길도 한적해졌다. 그는 수선대 위의 불을 끈다. 서 있을 힘만 있어도 재봉틀을 돌릴 거라고, 그는 종종 이야기한다. 얼마나 행복할까? 마음을 재서 옷을 만들고 수선하는 일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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