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 의(義)와 공동의 선(善)

나를 낮추는 겸손으로 공동의 선을 향하는
의로움이 필요한 시대이다.

글. 나종우

1960년대 말 의식 변혁을 바라던 이들이 부르던 노래 가운데 ‘혼자로는’이라는 노래가 있었다. 혼자 소리로는, 혼자 힘으로는, 혼자 사랑으로는 할 수 없으니 둘과 둘이 모여 커다란 함성, 커다란 힘이 될 때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노래였다.
우리는 흔히 여유가 있거나 여유를 가지고 있을 때 나 아닌 다른 이들에 대해 생각하고, 다른 일도 생각할 수 있다고 여긴다. 그러나 세상은 그 반대로 흘러가는 경우가 흔히 있다. 여유는 오히려 이기적인 사회를 만들고, 의(義)는 진정성 있는 의(義)보다 어떤 의미에서는 ‘강요된 의’나 ‘동원된 의’가 더 드러나는 경우들을 종종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경우 힘에 의한 의(義)는 모두가 바라는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없다. 그러기 때문에 어떤 경우라도 의라는 것은 힘의 논리가 아닌 공동의 선을 추구하고 있어야 한다.
얼마 전 서울 마포구의 한 원룸에 화재가 발생하자 119에 신고한 뒤 건물 안으로 들어가 집집마다 초인종을 눌러 이웃의 모든 생명을 살리고 본인은 연기에 질식해 숨을 거둔 안치범 씨의 의를 생각해 볼 수도 있다.
또 다른 예로 2010년에 발생한 칠레 광산의 매몰사건 때의 일을 들 수 있다. 당시 우루수아라는 인부의 대표가 매몰된 광부들에게 역할을 나누어주고 그 역할에 맞게 지하에서의 시간을 보내게 함으로써 전원이 안전하게 구출되었다. 우루수아는 모든 사람의 의로움을 잘 종합했고 각자의 의로움을 잘 이끌어 냈다. 인부 모두는 자신의 욕심을 버리고, 그 상황에서 자신과 타인을 오롯이 신뢰하며, 공동의 목표를 위해 짧은 기간이었지만 의로운 사회를 만들어냈다. 
공자도 의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공자가 말하는 진정한 의는 가진 자의 세상을 조금 더 자신과 자신의 무리에게 유리하게 이끄는 의가 아닌, 가지지 못한 자의 세상을 바꾸려는 의다.
최근 전주에서 세계종교문화축제가 열렸다. 이 축제의 개막식에서 4대종교(원불교, 불교, 천주교, 개신교)의 성직자들은 한 목소리로 합창을 하였다. 보는 이들 모두가 뭐라 말할 수 없는 뭉클한 감동을 느꼈다. 서로 다르지만 공동의 선을 향해 가는 모습은 요즘 시대에 우리들이 가장 소망하는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를 낮추는 겸손으로 공동의 선을 향하는 의로움이 필요한 시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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