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형 청동밀납주조 전통기능전승자

금속에 담긴 인생

청동밀납주조는 흙으로 형태를 만들고 그 위에 밀납을 입혀 조각한 뒤 점토를 덧씌운다. 이후 열을 가해 점토 밑의 밀납을 빼낸다. 여기에 청동 쇳물을 부어 식혔다가 바깥의 점토를 깨면 완성된다.

입가에 엷은 미소를 띤 불상.
그리고 부드러운 신체 곡선과 유려하게 흘러내린 천의(天衣). 이 모든 것이 불상의 재료가 청동이라는 것을 잠시 잊게 만든다.
평생 금속을 만져온 김유형 전통기능전승자(96-03호). 노동부 기능전승자 1호이자 국가산업발전의 기여자로 한국과학기술연구원장 표창, 국무총리 표창, 대한민국 현대인물사에 등재된 이력의 소유자지만 그의 경력 마지막 줄은 언제나 청동밀납주조 장인으로 기록된다.
“내 나이가 벌써 팔순이 되었으니, 60년 동안 금속을 만지며 살아 온 거예요. 그러다 보니 이름에 붙은 게 이렇게 많아진 거지요. 여러 이름이 있지만 마지막까지 가져가야 할 건 결국 청동밀납주조 장인이죠.” 장인으로서는 특이하게 금속과를 졸업해, 대우자동차와 포항제철,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금속분야 직장과 책임기사로 줄곧 일한 그. 자동차에 들어가는 모든 금속을 만들며 산업일꾼으로 불리던 그가 공예에 눈 뜬 것은 선진기술을 섭렵하기 위해 떠난 오스트리아와 일본 연수에서였다.
“금속 전시관과 박물관을 둘러보며 ‘우리는 왜 우리의 소중한 것을 지키지 못하는 걸까?’라는 의문이 들었어요. 우리에게는 누구보다 뛰어난 청동밀납주조법이 있는데 말이에요.” 귀국 후 바로 한옥 집을 구입해 공방을 차리고 전통 청동밀납주조 문화재 재현작업을 시작한 그. 세형동검, 청동거울, 화살촉, 금속활자 등 청동으로 만든 모든 문화재는 밤을 새워서라도 풀고 싶은 수수께끼 같았다.  



“60세에 한국과학기술연구원에서 정년퇴직을 한 후, 본격적으로 이 작업에 뛰어들었어요. 재현작업이 열이라면,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이 다 힘들었죠. 하지만 시행착오가 있어야 내 것이 된다는 것도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지요.” 청동기 시대의 청동거울인 다뉴세문경을 재현할 때는 원형을 본뜨는 데만 3개월, 재현까지 꼬박 일 년여의 시간이 걸렸다. 반짝반짝 윤이나 얼굴이 비쳐야 할 거울의 표면이 아무리 시도해도 비치지 않았던 것. 한국과 일본의 박물관과 도서관에서 문헌을 찾아 연구하고 조직검사까지 해 결국 수수께끼를 풀어냈다. 해답은 금속성분의 배합비율. 문헌의 배합비율과 달랐던 것이다. 백제 금동용봉 봉래산향로 재현작업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완벽한 작업을 위해 시설준비부터 다시 시작한 그였다.
“아내가 이런 저를 이상하게 생각했지요. 편안한 노후를 보낼 수 있는데 공방에서 밤늦도록 머리를 싸매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작업을 완성했을 때의 희열은 그간의 힘듦을 다 상쇄하고도 남는다는 그. 그렇기에 힘들다고 말하면서도 공방에 매일 출근해 작업하고 또 작업하는 것이 아니겠냐며 웃어 보인다.



“후배들에게요? 경험과 이론이 함께 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요. 특히 문헌조사 작업은 가장 기본이에요. 청동거울은 문헌조사만 6개월이 걸렸죠. 그걸 기초로, 현대적인 작업과 작품으로 발전시킬 수 있었던 거예요.” 그렇기에 바쁜 와중에도, 직종에 관계없이 후배들의 문헌조사 작업을 도와주는데…. 빼곡히 걸려있는 상패 중 기능전승자들이 준 표창은 후배와 동료들에게 그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기에, 더욱 자랑스럽게 생각한단다.   
“내 기술을 전승도 시켰고요. 지금까지 금속을 만지고 있으니, 이 정도면 인생의 금메달은 딴 거라 생각해요. 한 분야를 평생 지킨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하하.”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 장인으로서 전통기능이 끊어지지 않도록 임무를 다하고 싶다는 김 전통기능전승자. 작업복을 추스른 그가 다시 가마 앞에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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