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개벽 주체형성의 길
- 원불교 일기법의 역사적 위상 -

글. 박윤철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한 일기 중에 <안네 프랑크의 일기>가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유대인 학살이라는 엄혹한 역사적 상황 앞에서 감수성 풍부한 어린 소녀가 섬세한 필치로 남긴 이 일기는 전 세계인을 울린 글로 유명하다.
한편, 역사학자 김성칠 선생이 해방 전후에서부터 한국전쟁 전후에 걸쳐 서울을 중심으로 한 남북 대치상황을 적은 <역사 앞에서>(창작과 비평사, 1993)라는 일기는 당시의 좌우 갈등은 물론이고 전쟁이라는 극한상황에서 드러나는 인간군상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글로 유명하다.
그렇다면 원불교에서 있어서는 어떠한가? 두 말할 나위 없이 구타원 이공주 종사가 남긴 <구타원 일기>가 원불교인이 남긴 일기를 대표한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런데 원불교에서 쓰는 일기는 세상에서 일반적으로 쓰는 일기와는 그 차원이 다르다. 어떻게 다른가.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원불교에서 쓰는 일기는 ‘정신개벽의 주체’ 형성을 위한 일기다. 그렇다면 ‘정신개벽의 주체’ 형성을 위한 일기라는 말은 구체적으로 무슨 뜻일까? 구타원 종사의 글을 인용한다.

우리의 일기법으로 말하면 (중략) 부처님이 이르신 복혜양족을 연마하는 빠른 법이며, 고를 버리고 낙으로 들어가게 하는 인도(引導) 잡이이며, 범부로 성현이 되게 하는 방법이며, 지옥에서 극락으로 올리는 거룩하고 위대한 기관입니다.(‘매일 성적조사법 이행에 대하여’, <월말통신> 19호, 1929년 9월호)

 위에 인용한 구타원 종사의 말씀에 대해 부연하자면, 원불교 일기는 원불교에 입문한 모든 이들을 ‘범부에서 성현으로’ 즉 정신개벽이라는 원불교 개교의 이상(理想) 실현을 충분히 감당할 만한 주체로서의 인격양성, 실력양성의 구체적 방법이라 정의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일찍이 각산 신도형 종사는

   우리가 하는 일기는 오직 일원상의 진리를 각득하고 활용하며, 생활화하기 위하여 교리 실천에 그 표준을 두고 재가출가와 유무식 간에 누구든지 일분일각도 끊임없이 마음공부한 내용과 그 결과를 반성 대조하며, 날로 촉진하기 위한 것(‘마음공부와 상시일기’, <원광> 68호, 1970년 12월호)

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대산 종사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원불교 일기법은 ‘정신개벽을 위한 조불불사(造佛佛事)의 가장 진리적이며 가장 사실적인 방법’인 것이다.
원불교 일기법은 1925년(원기 10)에 ‘일기조사법’이라는 이름으로 제정되고, 1928년(원기 13) 5월 <월말통신> 창간호에 ‘단원 성적조사법’이라는 이름으로 활자화되어 재가출가와 유무식을 막론하고 전면적으로 시행되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한 가지는 ‘유무식을 막론하고’이다. 즉 학식이 있고 없는 데 관계없이, 다시 말해 문자를 해독하지 못하는 분들까지도 모두 일기법을 실천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정신개벽의 주체 형성 과정에서 우리 원불교는 유무식의 차별을 전혀 두지 않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한편, 초기 교단 당시에 재가출가와 유무식의 모든 교도들이 얼마나 정성스럽게 일기법을 실천하고 있었는지 그 상세한 상황에 대해서는, 일기법 전면 시행 10주년이 되던 해인 1938년(원기 23) <회보> 47호에서부터 50호까지 4회에 걸쳐 일기법 시행자 명단 전체를 게재하고 있는 사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 명단 속에는 정산 종사를 필두로 구인선진과 여성 10대 선진의 이름이 줄을 잇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회보> 50호(1938년 12월호)에서는
 
   일기법이 시행된 최초(시창 13년도)부터 시작하여 우금(于今; 지금까지) 만 10개년을 계속 실행한 대성심가 제씨(諸氏)와, 그 다음으로 5년 이상을 계속 실행한 회원을 소개코자 하오니 삼가히 사표를 삼을 진저

라 하여, 만 10년 동안 일기법을 계속 실행해온 이공주, 전음광, 박사시화, 권동화 네 분 선진님을 소개하고 있다.
정신개벽을 향한 원불교 100년의 역사! 그 역사는 바로 일기법 실천의 역사라 해도 좋지 않을까? 그리고 이 일기법의 실천이야말로 정신개벽으로 가는 가장 구체적이며 가장 실질적인 길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개벽의 종가’인 원불교가 과거 기성종교들과 ‘근본적으로’ 다른점이 있다면 바로 그 근거를 원불교 일기법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원불교 일기법은 민중 한 사람 한 사람을 역사의 주체로 들어 올리는 가장 진리적인 길이요, 파란고해 일체생령을 부처로 들어 올려 이 지상에 광대무량한 낙원을 이룩하는 가장 사실적인 길이다.
바로 그 일기법은 멀리 교단 창립 당시로 소급하여 아직 교리가 완정되기 전부터, 그날그날의마음가짐과 심신작용을 사실대로 표시하였다가 9인단원이 한 자리에 모여 대종사님을 모시고 자아반성과 상호반성으로 스스로의 선악과 죄복(罪福)을 결산해 보는 동시에, 스승님의 감정과 지도를 받들어 진리적인 생활로서 스스로의 인간을 개조했던 <성계명시독(誠誡名時讀>에 기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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