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곳,
그리움으로 쌓이다

강원도 평창의 숨은 땅,
미탄면 돈너미마을에서

사람 몇 숨어 살기 좋은 땅이 있습니다.
산 첩첩한 강원도 산골에서도 다시 산길을 돌아서 올라야 겨우 만나는 곳. 그곳에 올라서면 더 올라야 할 산이 보이지 않죠. 끝없이 펼쳐진 하늘은 울타리가 되고, 첩첩 쌓인 봉우리들은 그대로 정원이 됩니다. 하지만 산 아래에서는 결코 올려다 볼 수 없는 땅이기도 합니다.
평창군 미탄면 돈너미마을. 예전에는 화전을 일구던 사람들의 땅이었지만, 이젠 우리나라 대표적인 카르스트 분지지형으로 소문이 나면서 간간히 찾아오는 사람들의 발길이 늘었습니다. 산길이 끝날 때쯤 만나는 외딴집에는 노부부가 20년 가까이 농사일을 하면서 살고 있죠. 본래 면소재지에 살다가 올라왔는데, 이곳에서 아이들을 키워 대학도 보내고 서울에 조그만 아파트도 장만했다고 합니다.
사람이 그리운 안주인은 처음 본 사람에게도 “커피 한 잔 대접해야 하는데….”라며 집안의 세세한 이야기를 건네줍니다. 본래 이곳에도 집이 두세 채 있었는데, 모두 흔적만 남기고 떠나 이제 홀로 남았다는 군요. 



“집 앞 풍경이 참 일품입니다.”
“처음 오는 사람들은 다 그렇게 이야기해요.”
“달이 뜨면 더 멋질 것 같아요.”
“글쎄요. 우린 그냥 살아요.”
참 신기합니다. 개울도 없고 우물도 없는 그곳에서 부부는 그 긴 세월동안 차로 물을 길어다 쓰면서 살았다니 말이죠. 그래서 봄·여름·가을 농사철에는 이곳에 정착하지만, 바람에 매서운 겨울에는 사람이 그리워 서울로 올라간다는군요. 그러게요. 산다는 건 익숙해지는 것인지 혹은 그리워지는 것인지….
(인근에는 카르스트 대표지형으로 유명한 고마루가 위치함.)
20년 만에 지인을 만났습니다.
그는 강물이 굽이굽이 돌아 흐르는 동강 가에 삶터를 일구었죠. 2년 여에 걸쳐 강원도 곳곳을 뒤져 겨우 찾은 땅이라고 합니다. 그때만 해도 숨겨져 있었던 이곳에, 역시 수만 년 동안 숨겨져 왔던 동굴이 발견되면서 큰길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이건 행운일까요, 세파의 시달림일까요.

그 지인이 모처럼 여유를 내어 길을 재촉합니다.
그렇게 따라나선 걸음은 미탄면 청옥산(1,256m) 정상의 너른 평지, 육백마지기에서 멈춰 섰습니다. 꽃잎처럼 첩첩이 쌓인 산 능선 사이사이로 그리움이 피어납니다. ‘저곳에는 또 어떤 사람들이 숨어 살까?’ 한참을 참았음에도 결국 그리움은 말문을 열어버립니다. 
“이 풍경을 다 조망할 수 있는, 사람 사는 땅이 있어요?”
“그럼, 수도자가 살기 좋은 외로운 땅이 있지.”
그 땅은 높은 산 중턱일 것이고, 제법 넒은 땅이 호젓할 것이고, 산봉우리들은 그 집을 에워싸고 적막의 노래를 부르겠죠. 그리고 집 옆으로는 조그만 개울이 돌돌돌 흘러갈 것입니다. 산에서 태어난 사람의 산에 대한 그리움은 어쩔 수가 없나 봅니다.
그래서 인연지를 찾아 나섭니다. 내 몸을 숨겨줄 인연의 땅. 우리 삶의 여행은 그래서 늘 고독하나 봅니다. 천겹 만겹으로 쌓인 고독과 그리움,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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